보이스피싱 피해는 올 하반기 들어 급격히 줄었다.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정부는 경찰과 금융당국의 공조 뿐 아니라 외국 수사당국과도 협조하면서 수많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포통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보이스피싱 조직들의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융합'이다.
종전의 보이스피싱 수법은 유명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단순하고 어설펐다.
그러나 최근의 보이스피싱은 해킹과 절도 등 다른 범죄와 연계해 피해자의 의심과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심지어는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근무 중인 직원의 이름을 도용하여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뺏는 경우도 발생했다,
■ 융합형 보이스피싱 범죄 기승... '깜빡' 속아
"당황하셨어요. 고객님?" 한때 유행했던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보이스피싱의 수법은 조잡해서 속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어눌한 말투와 황당한 요구, 캐물으면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한동안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면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웃음거리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다른 범죄들과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법을 사용하면서 보이스피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진 때문이다. 게다가 신상정보가 노출된 상황에서 수십만원 어치의 음식이 배달돼 손해를 보는 등의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이중 가장 오래된 융합형 보이스피싱이 바로 '스미싱'이다. 가짜 사이트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이 방법은 먼저 피해자의 컴퓨터나 휴대폰을 해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금융사 직원으로 가장해서 통장번호와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을 빼낸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치밀하고 교묘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최근에는 실존 인물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도 성행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주에 '금감원에 근무하는 조성목 과장'의 전화를 받은 후 진위를 묻는 신고가 많았다고 23일 밝혔다.
직급은 다르지만 실제로 조성목이라는 사람은 금감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다. 현재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금융사기 대응을 총괄하는 서민금융지원 국장(선임국장)의 직급을 갖고 있다. '그놈 목소리'라고 불리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통화내용을 담아 공개해 피싱 사기 예방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이들 일당은 보이스피싱에 절도나 편취하는 방법을 융합한 '현금수취형'의 수법을 썼다. 이 방법은 피해자에게 "안전조치를 하지 않으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은 후 현금을 맡아준다고 하거나 집에 보관토록 해 이를 빼내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는 몇가지 형태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침입 절도형'이다. 피해자에게 돈을 냉장고 등에 보관하게 한 뒤에 몰래 들어가 훔쳐가는 것으로 지난 9월 19건, 10월 36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직접 만나서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안심케 한 뒤 돈을 받는 '대면편취형'도 올 1분기 한 건도 없었지만 9월에 23건, 10월 11건으로 증가세다.
▲ 금융감독원의 보이스피싱지킴이사이트 (phishing-keeper.fss.or.kr)에 접속하면 보이스피싱 피해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웹페이지 캡처
■ 금전피해보다 위험한 2차 피해
보이스피싱 범죄는 급격히 줄었다. 올 상반기에는 월 평균 피해자가 1,707명에 달한 반면 9월에는 612명, 10월에는 287명으로 주는 등 당국의 노력이 효과를 봤다. 1인당 피해액 평균도 상반기 평균 1,523만원에서 9월 1,225만원, 10월 1,219만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피해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자칫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융합형 보이스피싱은 정교한 수법으로 피해자가 속기도 쉽지만 금전적인 피해 외에 신체적인 피해도 입을 수 있다.
'스미싱' 보이스피싱은 이미 금전적 피해와 별개로 사생활 노출 등의 피해를 줘 악명이 높았다.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일부 피해자는 자살을 하기도 했다.
현금수취형 보이스피싱은 실제 범죄자와 만난다는 것에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보이스피싱 일당에 신변을 노출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다. 만약 보이스피싱 일당이 돈을 뜯어내는 데 실패하면 피해자에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절도형 보이스피싱은 훨씬 위험하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보이스피싱 일당은 피해자의 집에 침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경우에 따라서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아직 이와 같은 피해 사실은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높아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며 "모르는 전화를 받고 조금이라도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면 즉시 경찰, 112나 금감원, 1332에 전화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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