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靖國) 신사 경내에서 23일 폭발물이 터졌다. 일본에서도 파리 테러에 따른 경각심이 고조된 가운데 경찰당국은 신사를 노린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도쿄소방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소재 야스쿠니 신사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조사결과, 폭발음이 들린 신사 남문 근처에 있는 남성용 공중화장실 천장과 내벽 일부가 불에 탔으며, 천장엔 가로ㆍ세로 30㎝길이의 구멍이 생겼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발화장치에 사용되는 배터리 등이 발견돼 폭발물처리반이 출동했다.
이날 일본은 공휴일(근로감사의 날)인데다 오전 10시부터 야스쿠니 신사에서 추수감사제격인 ‘니이나메사이(新嘗祭)’가 진행돼 평소보다 인파가 많았다. 신사 측은 폭발음이 들린 뒤에도 예정대로 제사를 진행했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는 ‘시치고산(七五三) 참배’ 접수는 중단했다. 야스쿠니 신사 근처 공사장의 경비원은 NHK와 인터뷰에서 “오전 10시쯤 야스쿠니 신사 쪽에서 한차례 폭발음이 들렸다”며 “꽤 큰 소리가 나서 놀랐다.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받드는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좌파계열이나 일본 우경화에 반대하는 쪽의 소행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2013년 9월에는 한국인 강모씨가 인화물질을 소지한 채 야스쿠니 신사에 입장하다 적발돼 방화예비혐의 등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파리 테러 이후 일본에선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부쩍 높아진 상태다. 일본에선 1995년 13명이 죽고 6,000명 이상의 중경상자를 낸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가 있었다. 당시 광신도가 1만1,400명에 달했음을 감안하면, 아무리 이민자나 난민 수용에 엄격한 일본이라지만 ‘이슬람국가(IS)’에 동조하는 자생그룹이 없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익매체는 “언론에서 이슬람문화를 옹호하는 듯한 전문가들을 등장시켜선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정부는 프랑스나 미국 주일외교공관과 프랑스계 기업이 입주한 빌딩, 프랑스인학교 등에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또 테러정보 일원화를 위해 ‘국제테러정보수집유닛’을 내달초 설치한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암만(요르단), 카이로(이집트), 자카르타(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 3개 도시와 뉴델리(인도)에 해외거점을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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