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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입력
2015.11.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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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1월 23일

에드윈 허블(1889~1953). 그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입증,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를 알게 했다.
에드윈 허블(1889~1953). 그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입증,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를 알게 했다.

약 500년 전 코페르니쿠스는 우리(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약 100년 전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우리(은하)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이 우주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로 지동설을 발표했지만 초판 400부를 다 팔지 못했고, 허블의 연구 결과는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지도 못했다. 어쨌건, 안드로메다 ‘성운(nebula)’이 우리 은하의 변두리에 놓인 가스와 먼지 덩어리 성운이 아니라 별개의 먼 ‘은하(galaxy)’라는 허블의 주장이 1924년 11월 23일 처음 세상에 전해졌다.

은하계가 곧 우주 전체냐 아니냐는 논란은 전부터 있었다. 천문학에서 ‘대논쟁’이라 불리는, 쌍방의 공개 진검 승부가 벌어진 게 4년 전인 1920년 4월 26일이었다.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섀플리-커티스 논쟁’에서 섀플리는 은하계가 우주 전체이며 안드로메다는 이 은하의 일부라는 입장을 고집했고, 커티스는 별개의 은하라는 입장이었다. 양측은 팽팽히 맞섰지만 어느 쪽도 확증을 내놓진 못했다.

허블은 1889년 미주리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자랐다. 고교 시절 높이뛰기 선수였고, 시카고대에선 농구팀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학과에 진학했고,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 가서도 처음 전공은 법학이었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그의 꿈은 천문학자가 되는 거였다.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 다시 천문학으로 전향, 1차 대전 직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인근의 카네기 연구소 윌슨 천문대에 자리를 얻는다.

100인치 후크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를 관측하던 22년 어느 날 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 starsㆍ밝기가 대칭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어두워지다 비교적 빨리 최고 밝기로 빛나는 항성)을 촬영하게 된다. 그는 1912년 하버드대 컴퓨터공학자 헨리에타 리빗이 발표한 변광성 광도와 주기 성간 거리 계산 공식으로 거리를 측정, 안드로메다가 지구에서 약 86만 광년 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거리는 우리 은하의 가장 먼 별들 사이의 거리(약 10만 광년)보다 8배나 먼 것이었다.

250만년 전에 건너온 안드로메다의 빛. NASA.
250만년 전에 건너온 안드로메다의 빛. NASA.

21세기 인류는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가, 허블의 계산과 달리 250만 광년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를 알게 하고 우리 은하가 우주의 변두리의 변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한 데 비하면 허블의 ‘오차’는 사소했다. 그의 발견이 지닌 의미를 세계 언론이 알아챈 건 이듬해 2월 그가 미국과학진흥협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우주가 가만히 있지 않고 팽창하고 있어 안 그래도 먼 별들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한 것도 허블이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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