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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뚝섬 뗏목길 500리… 바위 피하고 여울 통과 노ㆍ삿대질 중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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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뚝섬 뗏목길 500리… 바위 피하고 여울 통과 노ㆍ삿대질 중노동

입력
2015.11.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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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 앞 동강가에 선 뗏목사공 홍원도씨. 산도 물도 험하건만 그의 얼굴에는 힘든 삶을 산 사람의 고단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영준 교수 제공
자신의 집 앞 동강가에 선 뗏목사공 홍원도씨. 산도 물도 험하건만 그의 얼굴에는 힘든 삶을 산 사람의 고단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영준 교수 제공

수시로 변하는 자연과의 싸움

동강의 황새여울ㆍ된꼬까리여울

유속 빨라 바위에 걸리면 사망사고

강 따라 뗏목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 저렇게 편한 일이 있을까 싶다. 강물이야 저절로 아래로 흐르는 거니까 동력도 필요 없고, 폭이 한정된 강에서 하류로 일방적으로 흘러내려가니까 길 잃을 염려도 없고, 따라서 내비게이션도 필요 없다. 망망하게 넓은 바다에서의 항해는 내비게이션이 전부라고 할 수 있지만 강에서는 그런 것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에서 마지막 뗏목사공 홍원도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는 그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영월에서 태어나 온갖 힘든 노동은 안 해 본 것이 없는 홍원도씨에게 뗏목을 모는 일은 또 다른 중노동이었다. 대도시에서 보는 강은 폭이 넓고 수심이 깊고 흐름이 부드럽지만 나무의 원산지인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의 강은 넓지도, 깊지도 않다. 그 강으로 뗏목을 몰고 간다는 것은 수시로 변하는 자연에 살살 비위를 맞춰가야 하는 일이다. 강물이 얕아지면 삿대로 강바닥을 밀지만 그래도 안 되면 사공이 물에 들어가 뗏목을 밀어야 한다. 뗏목이란 것 자체가 무거운데 그게 강물을 먹으면 더 무거워진다. 그 뗏목이 얕은 강에 걸쳐서 안 내려 가면 세 개씩 묶은 뗏목들을 풀어서 밀어야 할 때도 있다.

항해만큼 어려운 강에서의 뗏목 몰기

바다에는 풍랑도 거세고 위험이 많지만 강은 장마나 태풍 때 물이 불을 때만 아니면 별 위험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틀린 생각이었다. 동강에는 황새여울과 된꼬까리여울이라 불리는 두 난관이 있다. 여울이란 물이 좁아지고 얕아지면서 유속이 빨라지는 곳이다. 급물살을 탄 뗏목이 바위에 부딪쳐 사공이 죽은 일도 있다고 한다. 뗏목의 내비게이션은 바위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게 뗏목의 방향을 잘 잡는 행위다. 사공은 평소에 그 여울의 돌들을 치워서 뗏목이 잘 지나가게 물길을 정비하는 일도 해야 한다.

뗏목의 관점에서 본 세상.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 멋진 바위라고 감탄했는데 뗏목사공 홍원도씨 얘기를 듣고 나서 보니 엄청난 장애물로 보였다. 바위 사이의 여울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이영준 교수 제공
뗏목의 관점에서 본 세상.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 멋진 바위라고 감탄했는데 뗏목사공 홍원도씨 얘기를 듣고 나서 보니 엄청난 장애물로 보였다. 바위 사이의 여울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이영준 교수 제공

분업화 안 돼 산판일까지 사공 몫

폭 4mㆍ길이 30m 뗏목 3개 엮어

골지천-조양강-동강-남한강-한강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소요

두세 차례 왕복하면 한해벌이

그렇다면 뗏목은 누가 만드는 걸까? 여기는 일이 분업화되어 누구는 뗏목만 만들어 누구는 강에서 몰고 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사공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일단 산판작업을 하는 산에 올라가서 직접 나무를 벤다. 목질이 단단해서 가구 만들기 좋은 참나무나 물푸레나무는 무거워서 뗏목을 만들 수 없다. 우리 상식에 나무는 당연히 물에 둥둥 뜨는 거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무거운 나무는 물에 많이 가라앉는다. 얕은 물에서 가라앉으면 뗏목이 강바닥에 닿아 곤란하다. 그래서 덜 무거운 소나무로만 뗏목을 만들 수 있다. 보통은 봄에 나무를 베어 말린 다음 가을에 뗏목을 엮어서 강에 띄운다.

산판작업장에서 강으로 나무를 옮기는 것도 사공이 직접 해야 한다. 굵은 나무들을 베어 1.8m 정도의 길이로 자르면 그걸 굴리거나 밀어서 산 아래로 옮긴다. 아주 굵은 나무는 밑에다 동발(바퀴노릇을 하는 둥근 나무)을 깔아서 밀고 가기도 한다. 체구가 자그마하고 1934년생임에도 여전히 동안이라 평생 힘든 일 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홍씨는 한 때 150㎏ 무게의 나무를 지게에 져본 적도 있다고 한다. 시골 할아버지라 단위가 정확치 않으신가보다 하여 재차 물었으나 분명히 150㎏이라고 한다. 키가 150㎝ 정도 돼 보이는 홍씨의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산에서 잔가지를 해다가 지게에 지고 다니던 습관이 점점 커져서 힘이 장사가 된 것 같다. 강가로 끌고 내려온 나무들은 끈으로 엮어 뗏목을 만드는데 보통 느릅나무 줄기나 칡줄기를 많이 쓰는 편이다. 그렇게 엮으면 폭 4m, 길이 30m의 뗏목이 된다. 그런 것을 세 개까지 엮어서 몰고 간다. 홍씨는 19세부터 26세까지 이 고단한 일을 하며 살았다.

양력의 원리 이용한 뗏목의 노

비행기 날개 뒤집힌 형상의 노

양력 원리로 원하는 방향 가능하게

뗏목이 흘러가는 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지도를 보니 강원도 산골을 흐르는 하천들은 한 많은 사연만큼이나 굴곡이 많았다. 정선, 평창의 산들 사이를 꼬불꼬불 흐르던 골지천은 정선읍 부근에서는 조양강이 되고 읍내를 벗어나서는 동강이 된다. 동강은 영월읍에서 서강과 만난다. 서강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이른바 한반도 지형을 하고 있다고 해서 한반도면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만나서 이뤄진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서 이윽고 남한강이 된다. 남한강은 꼬불꼬불 흘러서 단양을 거쳐 충주를 지나 여주와 양평을 거쳐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서 한강이 된다. 그리고는 팔당과 미사리를 거쳐 마침내 서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도 걸리는 코스다. 500리라고 했으니 200㎞쯤 되는 물길이다. 뗏목에는 거주시설이 없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강기슭에 묶어 놓고 주막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또 물길을 나섰다. 서울에 이르면 뚝섬이나 마포, 노량진에 뗏목을 세워 놓고 해체하여 목재로 팔면 일이 끝난다. 일의 대상과 타고 갈 수단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 영월로 가려면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트럭을 얻어 타고 가야 한다. 예전에는 영월에서 서울에 뗏목 몰고 두세 번 가면 1년 벌이가 됐다고 한다. 떼돈이라는 말도 뗏목을 팔아서 번 돈이라는 설도 있다.

현대판 뗏목.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샹하이의 양산항을 들어서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항구인 양산항에 컨테이너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현대판 뗏목.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샹하이의 양산항을 들어서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항구인 양산항에 컨테이너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뗏목의 동력은 오로지 물의 흐름과 인간의 근육 딱 두 가지다. 매우 자연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무를 엮어 만드는 뗏목에는 쇠가 전혀 쓰이지 않는다. 뗏목 자체에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보통 두 사람이 몰고 가는데, 앞에는 방향을 잡기 위해 노를 젓는 노꾼이 타고, 뒤에는 강바닥에 걸리지 않도록 삿대로 밀어주는 삿대꾼이 탄다. 그런데 뗏목의 노는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 노의 단면이 비행기 날개의 단면과 비슷하다. 비행기와의 차이점이라면 뗏목의 노는 비행기 날개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돼 있다는 점이다. 비행기 날개는 밑이 평평하고 위가 불룩해서 위아래에 압력차가 생겨서 모든 물건은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하는 원리에 따라 날개를 위로 밀어 올린다. 그리하여 뜨는 힘, 즉 양력(揚力)이 발생한다. 뗏목의 노는 비행기 날개가 뒤집힌 형상으로 돼 있기 때문에 위로 밀어 올리는 대신 아래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 날개의 경우는 매질이 공기지만 노는 물이므로 공기보다 밀도가 훨씬 높아서 노를 천천히 저어도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노를 젓는다는 것은 양력의 원리를 잘 이용해서 물을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이는 물을 억지로 밀어서 뒤로 보내는 서양 배의 노와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다. 예전에 남해안의 보길도에 갔을 때 본 배의 노도 비슷한 단면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어촌이나 강촌에서 이런 형상의 노를 쓰는 누구도 그것이 비행기 날개 단면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해안과 영월이라는, 서로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서 어떻게 비슷한 원리와 구조의 노를 쓰게 됐을까? 이 미스터리는 아마 조선공학자와 민속학자가 같이 머리를 맞대야 풀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트럭과 댐에 밀려 사라진 운송수단

이제는 뗏목은 사라져서 볼 수가 없다. 워낙 원시적인 테크놀로지라 현대적인 테크놀로지의 공격을 당할 수가 없다. 뗏목을 사라지게 한 두 가지 테크놀로지는 트럭과 댐이다. 트럭으로 나무를 나르니 뗏목보다 훨씬 빠르고 쌌고, 양수리를 지나 한강으로 가는 길목을 딱 가로막고 세워진 팔당댐은 뗏목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버렸다. 몇 년 전까지 영월군에서 하던 동강축제 때 뗏목을 만들어 강에 띄우는 시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트럭ㆍ댐 테크놀로지에 사라졌지만

10만마력 컨테이너선으로

강인한 뱃사람의 핏줄은 이어져

필자는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운반선 등 큰 배를 탄 경험이 좀 있기 때문에 그런 배들과 뗏목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께가 4㎝가 넘는 강철로 돼 있고 10만톤이 넘는 몸집에 첨단 항해장비와 안락한 거주공간을 갖춘 현대의 배와 강원도 산골의 소나무로 된 뗏목을 비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강물의 흐름과 사람의 근력으로 모는 뗏목과, 벙커씨유를 때 10만 마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현대의 배를 비교하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는 다양한 종들이 공존해야 유지되듯이, 다양한 종류의 배들도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같은 대형선박뿐 아니라 LNG선이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준설선, 시추선 같은 특수한 배, 예인선이나 도선사선 같이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들이 다양한 층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뗏목은 그 생태계의 맨 아래 층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인공적인 동력을 쓰지 않으며 항법장비가 없고 선원을 보호하거나 구조할 수 있는 설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홍씨는 강한 사람이었다. 홍씨는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초등학교조차도 못 다녔지만 산판이든 뗏목이든 농사든 공사든 평생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상하지 않게 보존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 같은 것이 있었다.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전혀 없는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커다란 첨단 선박의 선장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10만톤이 넘는 선박과, 거기 실린 6,000개의 컨테이너, 그리고 20명의 선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덕에 강철로 된 현대판 뗏목은 핏줄 속의 적혈구처럼 오늘도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물자를 나른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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