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김 전 대통령 생가에는 오전부터 전국에서 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 생가와 바로 옆 분향소가 설치된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에는 이날 오후 4시까지 조문객 2400여명이 찾았다. 이들은 생가 곳곳을 둘러보며 김 전 대통령의 사진과 친필로 쓰인 본채의 ‘상량문’을 한동안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비교적 차분하게 애도를 표했다.
이날 오전 일찍 충남 보령시에서 출발했다는 정대준(45)씨는 “서거 소식에 일정을 조정했고 6시간 30분을 달려 생가를 찾았다”며 “금융실명제 실시, 군(軍)의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 등 개혁적인 정책으로 민주화에 앞섰던 정치인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거제시민 민진호(55)씨는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부마항쟁을 경험했고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열망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며 “서거 소식을 듣고 덜컥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PK(부산ㆍ경남)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던 김 전 대통령이었기에 셍가를 방문한 부산시민들도 한결같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미숙(78ㆍ여ㆍ부산 동래구)씨는 “우리나라 발전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진행됐다면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라는 업적을 남겼다”고 했고, 김경식(32ㆍ부산 북구)씨는 “우리세대에게도 부산에서 정치활동을 했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친숙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다남(83ㆍ여ㆍ부산 중구)씨는 “어릴 때 대계마을에 살던 남편은 무장간첩에게 살해당한 김 전 대통령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간첩에게 한마디 했더니 총을 쐈다고 했다”고 일화를 전하며 “40년 전 남편과 방문했을 때는 슬레이트 집에 인근은 온통 논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예전에 찾아왔던 곳이기도 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유난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58년 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서구 갑에 출마, 낙선한 뒤 4ㆍ19혁명 이후 치러진 5대 총선에서 다시 같은 선거구에 출마, 당선됐다. 특히 정계 은퇴 후에도 PK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지칭하는 상도동계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이 같은 이유로 경남 거제시를 포함해 부산과 경남지역에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경남 거제시는 이날 오후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과 거제실내체육관에 분향소를 설치, 조문을 시작했다. 경남에는 경남도청 앞, 진주시청 앞 광장, 양산시 종합운동장, 거창군청 로터리 등에 분향소 각 1곳씩 설치된다. 부산은 부산시청 1층 로비와 부산역광장 앞에 각 1곳씩 분향소가 설치된다. 거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분향소는 내일부터 조문이 가능하다.
김 전 대통령의 육촌 동생 김양수(62ㆍ경남 거제시)씨는 “가족으로서 아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애도를 표해주시는 것 같아 위안이 된다”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거목이라는 점만은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893년 지어진 생가는 많이 낡아 새로 단장돼 2000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부친 고 김홍조옹이 대지와 건물 일체를 거제시에 기증했으며 시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5억원을 들여 2001년 5월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김 전 대통령이 13살까지 성장한 이곳은 대지 108㎡에 본채와 사랑채를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생가 옆에는 대지 475㎡에 2층으로 지은 김 전 대통령기록전시관이 2010년 5월 개관해 지금까지 41만5,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거제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생가 옆 분향소는 5일장이 치러지는 오는 26일까지 운영된다. 거제=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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