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다가 스마트 폰으로 기사를 훑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전. 한국이 일본에 0:3으로 뒤지고 있었다. 8회말이었다. 졌구나, 생각했다. 20분이 채 안 걸려 집에 도착했다. 적적함을 메울 겸 들어오자마자 TV를 켰다. 화면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9회초, 스코어가 2:3으로 변해있었고 한국의 만루 찬스였다. 어? 하는 순간 이대호가 배트를 휘둘렀다. 2타점 적시타. 4:3 역전이었다. 중계진이 ‘기적’이란 단어를 남발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곤 9회말 수비. 일본의 찬스가 3루 땅볼로 무산되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여겼다. 불가능이라 속단한 일의 불가사의한 반동력으로 일순 초라해진 사람과 불안과 초조를 끈기와 집념으로 변환시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의 환희가 엇갈리고 있었다. 승리에 도취되기보다 그 명백한 낙차 속에서 울고 웃는 삶의 많은 디테일들이 한꺼번에 투사되었다. 사뭇 황망한 기분이었다. 기적과 낙망이 종이 한 장 차, 1분 1초의 농간 같았다. 삶이 때로 만화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TV를 껐다. 네모 칸에 갇혀있는 나를 누가 그리고 있다는 요상한 생각을 했다. 내가 나를 바꿔 기적을 일궈낼 수 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둥근 전등이 뭔가 써 넣어야 할 말풍선 같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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