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2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과거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동고동락했던 정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3김 시대의 한축이었던 김 전 총리는 이른 시각인 오전 8시 50분쯤 휠체어를 타고 조문을 온 뒤 “김 전 대통령은 신념의 지도자로 국민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더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기 짝이 없다”고 애통해했다. 3김 중 유일하게 생존한 김 전 총리는 과거 김 전 대통령과 3당 합당을 이끌며 최초의 문민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이후 DJP연대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으면서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상도동계 막내로 김 전 대통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김무성 대표는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현역 정치인으로는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실질적으로 이루신 정치 지도자였다”며 “저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 측근인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대표께서는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빈소에 자제 분들이 계시지만 상주의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중요한 회의만 빼고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빈소에 머물겠다고 하셨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결성할 당시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1987년 6·10 항쟁에 뛰어들면서 정계에 입문한 김 대표는 이날 오전에 예정된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 개회식 축사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로 달려왔다. 김 대표는 이날 김 전 대통령 빈소에 절을 하며 오열했고 절을 마친 후 김 전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와 껴안으며 한 번 더 흐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온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김무성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와 함께 같은 상주의 입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조문 온 김종필 전 총리를 맞았다. 그 자리에는 일찍 조문 온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함께했다.
다음은 빈소에서 이어진 문상 대화.
김종필 전 총리(JP)=(돌아가실 때)의식은 계셨나요?
김현철=반수면상태로 계셔 가지고…
김수한 전 국회의장=건강하셔야 됩니다.
JP=(김무성 대표에게 악수 청하며) 심려가 많았어.
김무성=(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JP와 손잡으며) 고맙습니다.
김수한=이제 몇 분 안남았습니다.
김현철=(JP를 향해)사실 아버님이 걱정 많이 하셨는데…
JP=(현철씨에게)자당님 잘 모셔서…
김현철=아직도 아침에 말씀을 좀 드리고 왔습니다. 쇼크가 오실 것 같아서…
JP=(끄덕끄덕) 나도 이제 여생 얼마 안남았는데 저승에 가서 봬야지.
김무성=각하께서 총리님 약주 많이 하신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웃음)
JP=하여간 신념이 있는 분이야. 신념으로 못할 거 어려운 거 다 헤치고 오늘에 이른 분이야. 다른 사람 못 하는 일을 하신 분이요. 그래도 병원에 계신 동안에는 계시니까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허탈함이 있는데.
서청원=산책 많이 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됩니다.
JP=(현철씨에게)자당님 편히 잘 모셔요.
김현철=알겠습니다. 두 분이 하여간 너무 정다우셔서, 사돈 계실 땐 오히려 아버님이 더 어머님 챙겨주실 정도였는데… 이제 뭐 계속 말씀 못하시게 되니까 어머니가 많이 답답하셨죠. 2008년 이후로 건강이 조금씩 안 좋아 지신 것이 결국…
JP=병원에 한 7년 계셨나?
김현철=아닙니다 2013년도에 1년 반을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입원을 반복적으로 조금씩 더 하셨죠.
JP=(김 전 의장을 향해)국상은 제대로 얘기되고 있습니까?
김수한=예,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장지가 확실하게 약정돼 있는 건 아니라서 후보지 한두개 놓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JP=동작동에 모시지 않아요?
김수한=동작동에 모십니다. 얼마 전에 후보지를 가서 답사도 하고 했습니다만.
JP=회자정리란 말이 참 떠올라요. 운명하실 때 옆에 계셨어요? 특별히 말씀하신 거 없었습니까?
김현철=말씀하신 거는, 사실 한동안 말씀하시기 좀 어려우셨습니다. 어려우셨는데 2013년도에 1년반 입원해 계실 때는 그땐 말씀을 좀 하셨다. 늘 말씀하셨던 게…
JP=돌아가실 때까지 말씀하셨지요?
김현철=그렇습니다.이번에는 너무 급격하게 빨리 패혈증 때문에 빨리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도 깜짝 놀랐고, 목요일에 입원하셨는데 어젯밤에 돌아가신 겁니다. 3일만에 돌아가신 겁니다.
JP=건강은 매번 퇴원하셨다 또 일어나셨다 그랬지요?
김현철=네 맞습니다. 아무튼 총리님께서 지난번에 제가 (부인상) 갔을 때보다도 훨씬 더 정정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JP=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씀입니다. 일체 당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는데 유형 무형으로 방해하는 어떤 행위도 내 신념 꺾지 못하고, 역사는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신념을 말씀 하신 건데 그게 생각이 나네.
김수한=거제도 생가기념관 준공식 때도 그랬고 그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YS 연설에는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지금 말씀하신대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참 기막힌 말씀이죠.
JP=보통사람 생각지 못하는 얘기여. 그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인데…
김수한=그렇습니다. 초선 때도 여러가지 박해도 받고 하지만 닭의 목을 아무리 비틀어도 새벽이 되면 닭은 운다는, 그런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회 척결이라든지 금융실명제라든지 그런 것들 대담하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못하는 거죠 .위대한 건 큰 차이가 아닙니다. 결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청원=용기가 대단하시죠.
JP=충신 하나 어디 갔어. 끝까지 아버지 모시던 충신 하나 있잖아.
김현철=김기수실장님이요? 고생을 끝까지 많이 하고 있습니다.
JP=충신이야. 변함없이. (김기수 실장 들어오자) 어이구. (왼손 내밀어 악수 청함) 잘 모셨어. 긴 세월 일편단심 잘 모셨어.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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