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은행의 태생적 한계?

씨티은행의 조직 개편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씨티은행은 16일 전국 134개 개인고객 지점을 세 그룹으로 분류해 특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상 고객을 고액자산가, 개인사업자, 일반고객들로 나누어 영업점을 차별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논란의 핵심은 기존 일반 지점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모델 Ⅲ입니다. 직원들이 이를 구조조정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들 46개 점포에는 주로 나이 많은 지점장을 배치하고 총 인력이 6명 수준인 지점도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실적이 안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이를 빌미로 추후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씨티은행은 2017년 6월 말까진 노사협약으로 강제 구조조정이 어렵습니다.
직원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 건 그동안 씨티은행이 보인 행보 때문입니다. 당장 씨티은행은 꾸준한 점포 축소, 인력 감축을 통해 조직의 몸집을 줄여왔습니다. 점포 수는 250개에서 최근 134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최근 수 년간 구조조정을 통해 1,100명이 회사를 나갔습니다.
신규채용 이야기도 2011년 말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입니다. 직원들 사이에선 30대 후반, 낼 모레 마흔이 우리 부에서 막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온다고 합니다. 돈을 버는 만큼 사회에 고용 등 투자를 해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다른 시중은행에서 채용을 확대하고 있는 움직임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의 사기 저하입니다. 한 직원은 “‘나가라’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직원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도 “조직에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일할 의욕이 없다”며 “마음이 다들 떠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30~40대 젊은 직원들의 이탈로도 나타납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구조조정 이후 오히려 평균 근속연수가 1년 낮아졌다”며 “통상 희망퇴직 하면 나이든 직원들이 나갔지만 이제는 젊은 직원들조차 미래 없는 회사를 등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런 조직 개편으로 수익성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자산이 1억원인 고객 10명보다는 10억원 자산의 고객 한 명이 비용 대비 효율적이니까요. 하지만 씨티은행의 변신이 아쉬운 것은 은행이 단순한 기업이 아닌 공공성이라는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실상 시중은행의 기능을 포기하고 대기업이나 고액자산가 같은 ‘돈이 되는 고객들’에 힘을 쏟겠다는 거죠. 씨티은행의 대출금리가 시중은행 중 언제나 상위권이라는 것도 경영진의 이런 마인드를 뒷받침합니다.
씨티은행의 이런 행보에 업계에선 외국계 은행들의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본사에서 임명한 외국인 임원들은 길면 3년 짧게는 1~2년 머물다 한국을 떠납니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추진하기 보다는 단기 성과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긴 안목으로 상품개발을 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빨리 결과물을 내려고 하다 보니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씨티은행과 마찬가지로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점포를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추세입니다. SC은행은 올해 4년 만에 신규채용 공고를 내는가 싶더니, 20일 돌연 대규모 인력 감축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특별퇴직 신청 대상이 되는 직원만 전 직원의 45%에 달하는 2,500명이라고 합니다. 실제 감축 규모는 최소 1,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외국계 은행들이 늘 ‘한국 철수’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외국계 은행들은 다 ‘먹튀’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씨티은행은 지금부터라도 조직원들이 공감할 비전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장 돌아선 직원들의 마음부터 챙기는 게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해 보입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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