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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130명 살리고 멎은 '의인의 호루라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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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130명 살리고 멎은 '의인의 호루라기 소리'

입력
2015.11.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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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대우조선 화재 당시

화기 책임자였던 장숙희씨

“불이야” 근로자 대피시키다 숨져

"책임 다한 의인" 뒤늦게 알려져

대우조선 화재 때 숨진 화기책임자 장숙희씨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
대우조선 화재 때 숨진 화기책임자 장숙희씨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

“그 불길과 연기에도 호루라기 소리를 멈추지 않았어요. 칸막이로 다닥다닥 막힌 공간에서 그 소릴 듣지 못했으면 우린 빠져 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지난 10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건조 중인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8만5,000톤급) 탱크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장숙희(50ㆍ여)씨가 130여명의 목숨을 구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20일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인 거제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장씨는 사고 당시 불이 난 탱크 오른쪽 작업공간의 반대쪽에서 근무하던 중 연기를 발견하고 호루라기를 불며 ‘불이 났다’고 외치며 적극적인 대피유도 활동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많은 근로자들이 화를 면하게 했다는 게 다수 생존 근로자의 진술이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건 당시 승객을 버리고 홀로 도주, 300여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준석 선장과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인 장씨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숨진 장씨는 대우조선 한 협력업체 화기감시팀 소속으로, 4개월 교육을 받고 현장에서 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다. 당시 화재선박의 탱크 내부에는 모두 130여명의 근로자들이 작업 중이었고, 화재 발생지점과 유독가스가 번진 장씨의 현장 등에는 10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불이 난 선박의 작업장에는 장씨 등 모두 5명의 ‘화기책임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화기책임자’는 탱크 내부에서 화재 원인이 될 만한 물질 등을 미리 제거하고 화재 발생시 호루라기를 불어 근로자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탱크 내부에 칸막이가 워낙 많고 비좁아 한쪽에서 불이 나면 다른 쪽에서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작업 특성을 고려해 만든 직책이다.

사고 당시 장씨와 함께 탱크 안에서 일했던 A씨는 “작업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아래에 있던 장씨의 호루라기와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며 “소화기를 들고 내려가 보니 이미 불이 활활 타고 있어 긴급히 대피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생존 근로자들의 진술과 당시 작업현장 등을 고려할 때 장씨가 먼저 자신의 작업구역 근로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 다른 작업구역 근로자들에게 대피를 유도하다 빠르게 번진 유독가스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로 장씨 등 근로자 2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장씨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근로자들이 희생될 수 있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장씨가 근무한 협력업체 사장(63)은 “장씨는 자신의 소개로 입사한 동료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등 배려심이 깊고 항상 직원들의 모범이 된 직원이었다”며 장씨의 희생정신을 높이 샀다.

김영일 거제경찰서장은 “수습교육을 갓 마친 장씨가 자신이 배운 대로 화기책임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장씨는 진정한 의인”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남편 하영관(49)씨는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의 아내는 가정에서도 아들(23)과 딸(18) 뒷바라지에도 열성적이었다”며“조선소 근무가 위험하다고 말리는 가족들에게 ‘화기책임자’는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일할 수 있어 보람이 더 크다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거제=이동렬기자d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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