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삶으로… 생명 재순환의 놀라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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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삶으로… 생명 재순환의 놀라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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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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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서 생명으로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ㆍ김명남 옮김

궁리 발행ㆍ304쪽ㆍ1만8,000원

미국 메인주의 숲속 통나무집에 살면서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65ㆍ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는 어느날 친구에게 당혹스런 편지를 받았다.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묻거나 화장하지 말고 큰까마귀에게 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편지에서 친구는 “죽음은 다른 종류의 생명으로 바뀌는 과정“이고 “무엇보다 재생에 대한 야생의 찬양”이라며 “우리 몸으로 파티를 여는 것”이라고 썼다. 시체를 “밀봉”하는 매장은 “지구를 굶기는” 일이고, 화장은 연료가 많이 들고 온실가스가 나오니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생명에서 생명으로’는 이 편지가 계기가 되어 나온 책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임을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써낸 자연에세이다. ‘뒤영벌의 경제학’ ‘까마귀의 마음’ ‘숲에 사는 즐거움’ ‘동물들의 겨울나기’ 등 과학적이고 사색적인 책으로 사랑받는 저자인 그는 이 책에서도 편안하면서도 서정적인 글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는 모든 생물이 다른 생명으로 부활하도록 돕는 전문적 장의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피는 데 주력한다. 총 11편의 글은 이른바 ‘청소동물’ 이야기가 중심이다. 생쥐처럼 작은 동물의 송장을 땅에 묻는 송장벌레, 시체를 먹는 구더기, 딱정벌레, 큰까마귀, 곰 등 ‘자연의 장의사’들이 주인공이다. 동물의 똥을 동그랗게 빚어서 거기에 알을 낳고 유충을 키우는 소똥구리,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서 제몸을 내주는 연어, 죽어서 다른 생물을 키우는 나무도 이 대열에 들어 있다. 식물은 장의사가 아니지만, 궁극의 생화학자라는 점에서 따로 한 장을 차지했다. 시체를 둘러싸고 경쟁하고 협력하며 재빠르고 영리하게 자연의 장례를 치러내는 이들의 활동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미국 메인주의 숲에서 아프리카 초원까지 지구 전역을 다니면서 몸소 겪은 경험에서 건진 사례들로 써서 내용이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그린 그림으로 구성한 일러스트. 자연이 벌이는 사체 처리는 죽음 이후 벌어지는 만찬이지만, 생명의 재생과 부활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궁리 제공

궁극의 재활용가, 인간의 역할과 책임도 이야기한다. 다른 동물이 먹고 남긴 고기를 챙기던 인간이 똑똑한 사냥꾼이 된 뒤로 많은 동물이 사라졌다. 인간도 동물이고, 생명 순환의 일부이고, 먹이사슬의 일부이건만, 죽은 뒤에 다른 동물이 우리를 먹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인간의 고집을 지적한다. 저자는 “지상 최대의 쇼가 벌이는 파티에 나도 끼기를 바란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생명을 예찬하는 책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고,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사실 동양에서는 그리 낯선 게 아니다. 일례로 불교의 윤회사상을 들 수 있다. 티베트의 전통적 장례법은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주는 것이다. 그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죽은 이의 생명이 창공을 훨훨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죽음은 서럽거나 슬프지 않다.

저자의 시선이 어둡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더러 유쾌하게 농담을 하기도 한다. 차에 치어 죽은 사슴을 숲의 동물들에게 내준 날, 친구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벌인 잔치를 장례식에 어울리는 것이었다며 이렇게 썼다. “사슴이 기타 두 대, 벤조 한 대, 만돌린 한 대의 반주에 맞춰서 열 명쯤 되는 목소리가 저마다 소리를 냈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를 좋아한다면 더더욱 그랬으리라. 만약에 이것이 내가 생명의 재순환으로 돌아가는 차례였다면, 나는 이런 장례식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이런 자연의 장례를 잊어버렸다. 화장해서 재를 항아리에 담거나, 동물들이 건드리지 말라고 금속관에 넣어 묻기도 한다. 자연의 장의사, 청소동물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방식이다. 식용 동물이 죽으면 부산물까지 싹 가져가서 자연에는 조금도 나눠주지 않는다. 이처럼 인색한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그나마 가장 생태적인 장례라면 수목장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오랜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깔고 있다. 예컨대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는 큰까마귀가 실은 얼마나 점잖고 근사한지 설명하면서 큰까마귀들이 하늘에서 벌이는 발레처럼 멋진 춤을 묘사할 때 저자는 매혹당한 황홀경을 감추지 않는다.

성경 창세기는 인간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규정하면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우리는 생명에서 왔고 우리 자신이 곧 다른 생명으로 통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우리는 비할 데 없이 멋진 식물과 동물에서 왔고, 나중에 그것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우리가 내놓는 쓰레기는 딱정벌레와 풀과 나무로 재순환되고, 그것이 또 벌과 나비로, 딱새와 되새와 매로 재순환되었다가, 다시 풀로 돌아오고, 이윽고 사슴과 소와 염소와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보면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이 노래한 대로 “영원히 살아서 영원히 전진한다.”인간이 무리한 개입과 탐욕으로 생명의 인드라망을 끊지 않는 한 생명은 영원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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