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낙엽의 운명이란 대체로 뻔하다. 길 바닥을 뒹굴다 무심한 발걸음에 짓이겨지거나 빗자루에 쓸려 버려지는 정도. 아주 가끔은 산사(山寺) 마당에서 진한 향을 뿌리며 타오르기도 하고 소녀의 고운 책갈피로 변신하기도 한다. 경기 고양시의 한 공원 화단에선 차곡차곡 떨어져 쌓인 이파리들이 남 몰래 꽃을 피웠다. 낙엽 더미 속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이름 모를 버섯들이다. 날씨 탓인지 가뜩이나 우울하던 차에 저마다 활짝 갓을 편 모습을 보니 앙증맞고 반갑다. 비를 머금어 축축해진 낙엽이 버섯에겐 더 없이 좋은 생육 환경이었나 보다. 신기한 버섯 꽃에 눈길이 갈수록 제 몸을 적셔 남을 도운 낙엽이 기특해 자꾸 웃음이 났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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