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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음 세대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

입력
2015.11.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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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내다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일본을 여행하며 이 질문과 맞닥뜨리고 있다. ‘슬로 라이프’를 제창한 인류학자 쓰지 신이치 선생님이 데려간 첫 마을은 돗토리현의 지즈읍. 일본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이라는 이곳이 최근 급속히 늘어난 이주자로 주목 받고 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빵집 다루마리도, 일본에서 거의 사라진 작물인 삼베를 재배하는 우에노군도, 가나가와현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고토씨도 최근에 이 마을로 이주했다. 2, 3년 사이 1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이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숲의 유치원’ 때문이었다.

인구 7,000명의 지즈읍에는 1년 내내 숲에서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하는 ‘숲의 유치원’ 두 곳과 정해진 교과 과정이 없는 대안학교 서드베리 스쿨이 있다. 이 모든 일에는 지즈 읍장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 마을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다루마리 빵집에 보육원 건물을 임대해주고, 삼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아주고, 숲의 유치원과 서드베리 스쿨을 설립하도록 예산을 지원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의 자민당 지지자라고 했다.

다음날은 시마네현의 이와미 은광이 있는 오모리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의 중심은 군겐도(群言堂)라는 생활용품 브랜드. 일본 전역에 23개의 매장이 있는 군겐도의 본점이 이 마을에 있다. 35년 전 고향 마을로 내려온 다이키치씨와 그 아내 도미씨가 만든 군겐도의 회사 이름은 ‘이와미 은광 생활문화연구소’. “우리가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낡은 것, 버려진 것, 쓸모 없는 것,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되살린 생활용품 브랜드 군겐도의 물건은 하나같이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부부는 군겐도 외에 전통 료칸(여관) 아베가를 운영한다. 1789년에 지어진 무사 아베의 집을 사들여 다 부서진 흙벽조차 2, 3년에 걸쳐 발효시켜 새 벽으로 활용하며 고쳤다.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고쳐나갔기에 완성까지 13년이 걸렸다. 군겐도의 매장도 150년 된 민가를 18년에 걸쳐 개조했고, 이런 식으로 마을의 낡은 집 7채를 고쳤다. “돈은 사라졌지만 사람이 재산으로 남았어요. 돈이 아닌 사람에 의해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경험을 했지요.” 남편 다이키치씨의 말이다. 여관의 음식을 직접 요리해 매끼 손님들과 함께 먹는 도미씨는 늘 손님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고 했다. “한 사람도 싫은 사람이 없었어요. 이곳에 오면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누가 말하더라구요”라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어떤 장소는 스스로 신성한 힘을 지녀 그곳에 오는 이들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타임슬립을 해서 에도 시대의 일본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돈보다 사람을 우위에 두고 사업을 꾸려가는 두 분의 삶도, 낡은 목조 주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의 분위기도 이 시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모리 마을은 2007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지만 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관광업에 의지해 살아가는 주민은 극소수고, 마을에는 기념품점이나 식당, 카페도 거의 없다. 삶에서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그 가치를 지켜가고자 하는 두 분의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본 젊은이들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옛 것의 가치를 새롭게 표현해낸 군겐도의 부부. 마을을 지켜가겠다는 일념으로 외지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실험을 맡긴 지즈의 읍장. 아이들을 숲에서 뛰어 놀게 하기 위해 산골로 들어간 젊은 부부들. 이들은 눈앞의 이익이 아닌, 다음 세대의 삶까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감각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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