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가치로는 길바닥에 떨어진 10원짜리 인생처럼 치부되는 청춘이지만 우리 청춘의 값어치는 실로 어마어마하고 대단하며 찬란하다는 생각에서 두 명이 10원씩 ‘이십원 쁘로젝뜨’를 시작했습니다.”
단돈 20원을 들고 16박17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녀온 30대 세 남자가 자신들의 ‘미친 방랑’을 주제로 책을 냈다. 책 제목도 ‘이십원 쁘로젝뜨’다. 대한민국 금수강산의 숨은 절경과 남들에게 알려주기 아까운 비장의 맛집 소개 같은 건 한 줄도 없다.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의 초경량 에세이 버전 같은 이 책은 아직 친구가 되기도 전인 세 남자가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12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이십원 쁘로젝뜨의 문정수(36), 김광섭(35), 이정수(31)씨는 “서로 잘 모르던 상태에서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영혼의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남자는 이십원 쁘로젝뜨에서 서로 문방랑, 김방랑, 정수리라고 부른다. 방랑의 주인공인 두 남자는 한복을 입고 다녀온 여정을 글로 남겼고,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대변한 이씨는 사진을 찍었다.
이날도 문씨와 이씨는 한복을 들고 나타났다. “아이디어 회의 끝에 한복을 입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뭘까 생각하니 ‘유유자적’이었던 거죠. 덥고 짜증난다고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다닐 게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한복으로 의관정제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다니자는 뜻이었습니다. 무전여행 하듯 변변찮은 모습으로 다니고 싶진 않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갓부터 버선, 고무신까지 완벽하게 차려 입으니 마음도 단정해지더군요.”(문정수)
이들은 가볍게 차려 입어도 땀이 쏟아지는 폭염 속을 거의 매일 빨래를 해가며 한복을 챙겨 입고 길을 떠났다. 이씨는 “객관적인 시선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한복을 입지 않았다. 한복 때문에 행사 다니는 무명 연예인이나 호객꾼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문씨와 김씨는 “힘들 때도 인상 쓰지 않고 마음을 다잡게 해준 한복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난 건 “어차피 인생이란 목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걸하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한 번에 너무 먼 거리를 이동하지 말자’ 정도만 지키자고 서로 다짐했다. 문씨는 “불투명하고 불안한 상황을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봤다”며 “청춘도 그렇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들은 관상을 보고 캐리커처를 그려주거나 식당에서 1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잣돈을 벌었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먼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일도 있었다. 문씨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해도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건네면 누구든 함께 웃고 대화 나누는 걸 좋아했다”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고했다. “해외에서처럼 국내에서도 히치하이킹이나 현지인에게서 숙소를 제공 받는 카우치서핑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는 김씨는 “상대의 진심을 보려 하지 않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각박해지는 게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만난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다.
문씨는 연극배우다. 연극 ‘품바’를 보고 배우를 꿈꾸기 시작해 결국 18대 품바가 됐다. 김씨는 ‘카우치서핑’이란 여행서를 쓴 여행작가다. 이씨는 잡지를 끼고 살다 사진작가가 됐다. 미친 방랑이라는 도원결의를 했을 때 문씨와 김씨는 네 번째, 문씨와 이씨는 두 번째 그리고 김씨와 이씨는 처음 만난 사이였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책 출간에 이어 음원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토크쇼와 강연회도 준비 중이다.
이들은 또 다른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목표는 청춘문화공간으로 사용할 한옥을 짓는 겁니다. 물물교환 여행으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자본금을 모을 생각입니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청춘트리’를 만드는 건데요. 우리 같은 친구들을 세포분열 하듯 전국 각지에 만들어 청춘들을 응원하는 겁니다. 마음을 나누는 소박한 행동이 너와 나를 바꾸고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문정수)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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