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포르투갈 인도 원정대가 브라질 남부해안에 상륙한 이래 1822년 독립하기까지 300여 년 동안 식민지 경제를 부양한 것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금광이었다. 인디오 원주민을 노예화한 백인 지배자들은 일손이 달리자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거 수입해 부리기 시작했다.
브라질 흑인 노예 해방운동도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농장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소문으로 모여들면서 북동부 오지 퀼롬보스(Quilombos)에 공동체 마을을 이뤘고, 17세기 중반 무렵에는 인구가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사실상의 자치국가가 됐다. 11월 20일은 노예들의 그 해방국가 마지막 지도자 줌비(Zumbi, 1655~1695)가 숨진 날이고, 후예들이 ‘흑인 각성의 날 Black Awareness Day’로 정해 줌비와 해방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날이다.
줌비는 앙골라에서 노예로 끌려왔다가 퀼롬보스로 도망친 한 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6살 무렵 백인에게 붙들려 한 침례교 목사에게 선물로 주어진 건 불운이었지만, 교회에서 포르투갈어와 라틴어 교육을 받은 건 행운이었다. 종교의례를 돕던 그는 15살이던 1670년 교회를 도망쳐 자신이 나고 자란 퀼롬보스로 돌아갔다.
그는 뛰어난 전사였고 현명한 지도자였다. 포르투갈 총독의 군대는 퀼롬보스 소탕전을 수시로 벌였지만 워낙 오지여서 고전했다. 급기야 항복하면 고국 귀향을 포함한 전폭적인 자유를 보장한다는 회유책을 내놨고, 1678년 당시 지도자였던 강가 줌바(Ganga Zumba)는 그 미끼에 속아 수많은 이들을 이끌고 투항한다. 하지만 줌비는 흑인 노예가 남아있는 한 총독의 약속이 사실이더라도 혼자 자유를 얻을 수 없다며 소수를 이끌며 퀼롬보스를 지켰다고 한다. 그가 지킨 것은 밀림의 작은 자치영토가 아니라 남미 전체 흑인 노예들의 희망이었다. 그는 1695년 오늘, 한 부하의 배신으로 총독군에게 체포돼 처형 당했다.
브라질 노예제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해 수립된 브라질 제국이 멸망하고 공화국이 수립되기 직전인 1888년에야 폐지됐다. 그 200년 동안 줌비는 흑인노예들의 우상이자 자유의 표상으로, 시몬 볼리바르나 미겔 이달고보다 더 우람한 영웅으로, 기억돼왔다.
‘흑인 각성의 날’은 처음엔 노예 해방령이 선포된 5월 13일이었으나, 브라질 최대 흑인 인권단체인 ‘흑인 운동 Black Movement’이 줌비의 기일로 바꿨다고 한다. 이날 브라질 흑인들은 흥겨운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와 더불어 청소년을 위한 재미있고 교육적인 이벤트를 벌인다. 그들의 춤과 음악에서 브라질의 자랑거리가 된 삼바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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