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패션·만화·영화 등 다방면 협업 … 화장품 패키지의 새 지평 열어
키덜트 문화 확산에 유년시절의 향수 부르는 캐릭터 화장품 ‘인기 절정’
일본 등 해외서도 남다른 디자인의 제품 눈길
‘벌써 식상·브랜드 자산과 상관없어’ 비판적 의견도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8월 브랜드숍 어퓨를 통해 ‘도라에몽 에디션’을 선보였다. 쿠션, 섀도 팔레트, 틴트, 선크림 등 총 14종 24품목으로 이뤄진 ‘도라에몽 에디션’을 향한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첫 날 온라인에서 1시간 여 만에 준비한 물량이 몽땅 판매된 것이다.
마침 그때 화장품이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화장대 위에, 파우치 속에 모셔두고 소장하고픈 욕구가 놀라운 판매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메이크업 화장품을 쓰든 안 쓰든 도라에몽의 두터운 팬덤이 구매대열에 가세했음은 물론이다.
비슷한 시기 토니모리가 내놓은 ‘마이티 아톰 패키지’도 순항 중이다. 시트마스크, CC쿠션, 마스카라, 섀도, 틴트, 포마드 등 총 20여 품목으로 구성된 패키지는 한 달 여 만에 판매량 11만개를 넘어섰고 그중 ‘립톤 겟잇 틴트’의 인기 컬러 제품 일부는 공급하는 족족 팔려 나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화장품시장의 활력소가 된 ‘캐릭터’
‘도라에몽 에디션’이나 ‘마이티 아톰 패키지’ 외에도 국내 화장품업계는 캐릭터 열풍이 한창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접했을 만화 속 혹은 영화 속, 동화 속 주인공들이 죄다 소환돼 화장품 패키지 위에 자리를 잡았다. 캐릭터의 인지도나 충성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웬만해선 기본 판매량이 보장되고 대박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른바 ‘캐릭터 화장품’이 기대 이상의 인기를 누리는 배경에는 ‘키덜트 문화’가 있다. ‘키덜트(kidult)’는 어린이를 의미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다. 즉 아이들의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다름 아닌 ‘키덜트’라 지칭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이 각박해지면서 어른들은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키털트 문화’가 형성됐고 이를 겨냥한 시장도 태동했다.
NH투자증권 한슬기 연구원은 “복고 열풍의 주역인 20~40대들이 사회로 진출해 핵심 소비층이 되면서 키덜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며 “키덜트 문화가 드라마와 영화, 패션, 애니매이션, 화장품, 악세서리, 광고 등 전 산업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 차별화 위한 이업종과의 협업 활발
용기 혹은 패키지 디자인은 화장품의 품질이나 효과와 별 관련이 없다. 수집가가 아닌 이상 실제 사용할 화장품의 구매선택에 디자인을 제 1기준으로 삼을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중요하다. ‘포장은 침묵의 판매원’이라는 말처럼 화장품 또한 우선 디자인이 남달라야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고 한번이라도 더 손길이 간다.
더군다나 화장품은 감성이 풍부한 여성이 핵심 소비층이다. 또 본질적으로 그들의 ‘미(美)’를 위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디자인을 경시할 수 없다. 아무리 효능이 뛰어난들 화장대 위에 올리기에, 파우치 안에 휴대하기에 꺼림칙한 디자인이라면 선택받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 화장품시장은 수많은 브랜드들이 비슷비슷한 기능과 품질, 컨셉마저 유사한 제품을 내놓고 경쟁하고 있기에 차별화의 수단으로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된다.
때문에 화장품회사들은 남다른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외부의 힘을 빌리는 일도 흔하다. 그 대상은 화가, 패션 디자이너, 공예가, 웹툰작가, 동화작가 등 다채롭다. 공동작업·합작·협업을 뜻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화장품업계 마케팅의 주요한 트렌드가 된 지 오래인 것이다.
와중에 최근 ‘키털트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그들의 유년을 함께 한 캐릭터가 차별화된 디자인에 목마른 업계의 구세주로 떠오른 셈이다.
콜라보레이션 열풍은 만국 공통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이 지난 7월에 공개한 ‘아시아코스메틱포커스 5호’에 따르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콜라보레이션 화장품이 속속 출시돼 인기다.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선보이던 콜라보레이션 화장품이 최근에는 중저가 브랜드까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마니아들이 입소문을 내며 한정판 출시 정보를 미리 공유하고 구매대행 요청 등 활발한 바이럴 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도 우리와 비슷하다.
특히 애니메이션 대국답게 일본의 화장품 브랜드들은 인기 만화 캐릭터와의 콜라보레이션이 강세란 전언. 코스메키친(Cosme Kitchen)이 지난 여름 발매한 ‘서프스 업 피너츠(Surf's Up Peanuts)’ 한정판은 자외선차단제에 햇볕에 검게 그을린 스누피를 등장시키는 등 귀엽고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로 화제를 모았다.
DHC는 딥 클렌징 오일, 립밤, 핸드크림 등의 용기를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라푼젤 등으로 장식한 ‘디즈니 프린세스 리미티드 에디션(Disney Princess Limited Edition)’을 선보였는데 발매 3주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는 소식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 아티스트들도 콜라보레이션의 주요 대상이며 국내서는 아직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합도 눈에 띈다.
가네보의 임프레스아이씨(Impress IC)는 덴마크 출신의 플로리스트 니콜라이 버그만(Nicolai Bergmann)과 손을 잡았다. 장미를 모티브로 한 플라워 디자인의 거울이 포함돼 있는 세트 제품이 니콜라이 버그만의 대중적 인기를 업고 절찬리에 판매됐음은 물론이다.
문구회사와 협업한 화장품도 등장했다. 데코라걸(Decora Girl)이 문구 제조회사인 함께 선보인 ‘쿠피 디자인 마스카라(Coupy-Design Mascara)’는 어린 시절 사용했던 색연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모양새로 관심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은 “치열한 경쟁 상황의 일본 화장품 시장에서는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제품 용기와 포장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며 “화장품은 특히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주요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행 편승한 ‘너도나도’ 마케팅은 곤란
화장품업계의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이 시장에 활력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차별화를 위해 시도한 콜라보레이션이 일상화·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참신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모두가 전개하는 마케팅이 되면서 전과 같이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의 역사가 누적되면서 실제로 몇몇 유명 미술작품이나 캐릭터들은 여러 브랜드에서 중복 활용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마치 스타모델이 이 브랜드, 저 브랜드를 오가며 CF를 찍어대는 통에 소비자들이 헷갈려 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사실 콜라보레이션 마케팅과 빅모델 전략은 닮은 구석이 많다. 단숨에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엔 용이하지만 이를 온전히 브랜드 고유의 자산으로 남기기 어렵다는 점이 그렇다. 판매량과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지만 라이센스 비용 혹은 모델료 지출 때문에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모 중견 화장품기업 관계자는 “캐릭터 화장품이 열풍이라지만 명실공히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자체 캐릭터를 기획하고 알리려는 노력은 드물다는 게 아쉽다”며 “유행에 편승한 마구잡이식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브랜드의 지향점에 부합하는 전략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뷰티한국 뉴스팀 beauty@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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