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 각 부처에서 내는 보도자료에 부쩍 ‘정부 3.0’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업무를 주관하는 정부3.0추진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 정부 3.0은 정부 1.0 및 정부 2.0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개념이란다.
과거처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정책으로 계몽하고 관제동원하던 때를 ‘정부 1.0’이라 하고, 정부가 제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이 일부 참여하는 쌍방향 소통을 ‘정부 2.0’이라 하며, 여기에 무선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 등을 동원해 국민 개인별로 맞춤형 정보ㆍ정책을 제공하는 개념이 더해져 ‘정부 3.0’이 된다는 설명이다. 정리하자면 ▦정보ㆍ데이터 개방 ▦부처간 칸막이 없애기 ▦국민 개인별 맞춤 서비스 제공, 이 세 가지가 정부 3.0의 핵심인 셈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법한 얘기다. 정보통신(IT) 강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정교한 전자정부 시스템을 보유한 한국이기에 세계 어느 곳보다 정부 3.0의 이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론상 흠 잡을 것 없는 개념이어서일까? 정부 각 부처가 생산하는 홍보자료에서 이 개념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 이달 초 산림청에서 낸 ‘청소년 산림교육, 정부 3.0으로 국민이 직접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가 그 예다. 청소년 대상 산림교육에서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국민 자문단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부 3.0의 핵심 개념인 ‘개인별 맞춤 서비스’의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그냥 대국민 소통 강화라 말하면 될 것에 굳이 정부 3.0 개념을 무리하게 끼워 넣은 셈이다.
관세청은 최근 타 정부 부처와 협업해 통관단계에서 위험 수입물품을 검사하는 제도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정부 3.0 수입물품 협업검사’란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카르텔을 깨고 기업 담합을 단속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조차 새로운 사건처리 지침에 3.0이란 개념을 집어넣었다. 담합 단속을 법 위반자의 상황에 맞춰 ‘쌍방향 맞춤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정부 부처가 이처럼 무리수까지 둬 가며 정부 3.0을 강조하려는 이유는 뭘까? 최근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한 기관의 홍보 담당자는 새로 나오는 정책을 두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게 정부 3.0의 모범 사례라는 점을 꼭 강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컨트롤타워에서 정부 3.0 실적을 기준으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별로 순위를 매기고 그를 바탕으로 그 기관이나 기관장을 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실적들이 모이면 또 다시 ‘정부 3.0 모범사례’라는 제목의 공허한 보도자료로 기자들의 이메일을 채울 것이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듣기 좋은 개념 몇 가지 합성시켜 마치 새롭게 등장한 개념인 양 그럴싸하게 범주화하는 일. 그리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이 그랬고, 이번 정부의 ‘창조경제’가 그런 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침 이 정부에서 정부 3.0은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수단 중 하나라고 한다.
정책이 신선하고 국민 생활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굳이 정부 3.0 사례가 아니라 해도 언론은 알아서 장문의 기사를 쓰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너도나도 정부 3.0이란 표현을 남발하다 보니, 정작 원래 개념은 흐릿해지고 단어의 값어치는 떨어진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말이 되어 버린 셈이다.
정부 3.0에 걸맞은 핵심가치가 부족한 정책인데, 정부나 해당부처 스스로 3.0이라 우기기만 하면 정부 3.0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3.0을 홍보하는 목청은 높지만 그 메아리를 찾아보긴 어렵다. 정부 3.0의 홍보가 정부 1.0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다.
이영창 경제부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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