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21일로 1년, 말 많고 탈 많았던 새 제도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책값 할인율을 종전 19%에서 15%로 축소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한 개정 시행령에 따라 실용서와 학습참고서, 나온 지 1년6개월이 지난 구간도서의 무제한 할인이 금지됐다. 그 결과 가격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던 작은 출판사, 작은 서점들도 기댈 언덕이 생겼다. 작은 출판사의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고, 개성 넘치는 책과 독특한 독자 서비스로 지역과 소통하는 작은 서점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출판평론가 장은수씨는 “지난 10여년 간 출판계는 책을 깎아서 팔았지만 독자는 늘지 않고 줄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진짜 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와 소통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출판사와 서점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출판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는 콘텐츠 큐레이션(독자가 원하는 책을 골라서 제안하는 기능)이고, 서점도 지역 주민과 깊이 소통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독특한 책, 독특한 서비스로 마니아 고객을 늘려가는 독립서점이 일어서고 있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좋은 현상이자 출판 지형이 바뀌고 있는 증좌”라고 평가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12월부터 내놓겠다는 지역서점 15% 할인카드는 개정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역행하는 정책이자 단기적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가격 경쟁이 아닌 콘텐츠 경쟁으로 출판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전만큼 싸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심리적 저항이 있었고, 실제로 시행 직전 서점과 출판사들의 막판 할인 공세 때 기회를 놓칠 세라 구매 광풍이 불었다. 하지만 책값이 오를 것이란 우려와 달리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 신간 정가는 평균 6.2% 하락했다(문화체육관광부 12일 발표).
출판사와 서점의 매출이 줄긴 했다.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사)한국출판인회의가 회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1%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인문교양서를 주로 내는 한 중견 출판사의 마케팅 책임자는 “출판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5~30% 정도 매출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게 개정 도서정가제 탓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보다는 몇 년째, 특히 스마트폰 등장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독서량 감소와 출판시장 위축이 주요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정 도서정가제에 따른 시장의 단기적 위축은 시행 전부터 예상됐던 바이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 숙제는 도서관의 장서 구입 예산 확대다. 개정 도서정가제 이전 도서관은 최저가 낙찰제로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할인율 15% 이내를 지켜야 해서 장서 구입 예산이 늘지 않는 한 구입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 예산은 383억원으로 전년보다 29억원 줄었고, 내년 예산도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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