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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사건 변호인석엔 항상 그가 있었다

입력
2015.11.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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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주요 시국사건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조준희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1970년대 주요 시국사건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조준희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1세대 인권 변호사로 유신독재 시절 주요 시국사건 변호를 맡아왔던 조준희 변호사가 지병으로 18일 오후 별세했다. 78세.

조 변호사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63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용됐으나 1971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 등과 함께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정권이 사건 수임마저 탄압했던 1970년대 조 변호사는 리영희ㆍ백낙청 교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ㆍ원풍모방 시위 사건, YH노조 신민당사 농성 사건 등 정국을 흔들었던 대부분의 시국사건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특히 조 변호사가 다른 변호인단과 함께 1976년 12월 23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조작 실상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된 김지하 시인의 결심 공판에서 4시간에 걸쳐 변론했던 모습은 후배 인권 변호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날 결심 공판에서는 당시 미발표작인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변호인단이 낭독했다.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변호를 맡아 “수사 과정에서 협박과 고문에 못 이겨 (피고인이)허위 자백한 것”이라고 폭로했던 조 변호사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로부터 ‘반정부 활동자’로 간주돼 감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는 대한변협 지정 참관 변호사를, 수서개발비리 사건에서는 진상조사단장을 각각 맡았다.

조 변호사와 다른 인권변호사들이 몸 담았던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는 1988년 5월 일부 신진 변호사 중심으로 운영되던 청년변호사회(청변)와 합치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설립했다. 조 변호사는 2년 간 초대 민변 대표 간사를 맡았다.

조 변호사는 그간의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12월 인권변호사로는 최초로 국민훈장 모란상을 받았다. 조 변호사는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과거 군사독재정권 때보다 인권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보안법 등 구시대적 인권 억압 요소들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인권 문제로 남아 있다”며 “(나아가)정치적 인권 문제와 함께 환경권, 노동권 등 새로운 복지 지향적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에는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국선 변호 범위 확대,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법조 개혁의 새 틀을 짜는 데 기여했다. 2005~2008년 언론중재위원장을 지냈으며 대법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후보 등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고은 시인은 연작시 ‘만인보’ 중 ‘조준희’에서 “거기 변호인석에서 경쾌하게 일어나며/ 그의 조목조목은 산 넘고 물 건너/ 꽃소식 한 다발 가져온다”고 읊었다.

부인 함옥경씨와 사이에 아들 용석, 용욱씨와 딸 혜진씨를 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1일 오전 7시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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