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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숫자로 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입력
2015.11.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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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인한 논란은 우리 사회를 절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념 대립, 편향성 논란을 부추기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역사학자 10명 중 9명은 좌편향 딱지가 붙었고, 0.1%만이 ‘혼이 정상적’임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인식도 드러났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한 찬반 논란의 중심에 선 ‘편향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소 글이나 기사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데 쓰이는 ‘숫자’로 강조됐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숫자들의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51.6=운명

지난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51.6%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으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진 숫자입니다. 물론 박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국정화에 박 대통령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점을 따져본 뒤, 이 숫자를 5ㆍ1ㆍ6(오일육)으로 끊어 보면 의미는 달라집니다.

현 정부 들어 장관 인사청문회 때마다 “5ㆍ16은 쿠데타(군사정변)인가, 혁명인가”를 묻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에 장관 후보들은 어김 없이 “이 자리에서 답변하기는 부적절하다”고 답합니다. 장관이 될 사람의 역사인식이 그들의 장관으로서의 능력보다 중요한지 의문이 드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군사정변을 군사정변으로 말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후보들의 태도도 답답한 부분입니다. 적어도 이런 사례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은 516이 현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숫자라는 것입니다. 국정 역사교과서에서도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ㆍ16에 대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3=저항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반과 관련,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한국갤럽) 결과 나타난 국정화 반대 의견은 53%입니다. 한국갤럽의 11월 첫 주 결과로 지난 10월 12일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방침 발표 이후 처음으로 반대가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3일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학자, 교사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방침을 강행키로 확정하면서 반대여론이 높아진 것입니다. 학계와 단 한번의 토론회 없이 추진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 닫아버린 여론수렴 과정, 군사작전 펼치듯 앞당겨진 국정화 확정고시 등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풀이됩니다.

앞서 반대 여론은 10월 둘째 주 42%이후 셋째 주 47%, 넷째 주 49%로 지속적으로 높아지다 급기야 50%를 넘었습니다. 반면, 찬성 여론은 같은 기간 42%, 36%, 36%에 이어 11월 첫째 주도 36%에 머물렀습니다. 정부의 불통과 무리한 추진, 학자들의 반대 여론 무시 등으로 인해 반대 여론의 상승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90=확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통틀어 가장 많이, 가장 자주 거론된 숫자가 90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검정제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국정화는 필수임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역사학자 90%가 좌편향 됐다”는 데 쓰였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지난달 17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행사에서 “대한민국 국사학자 90%가 좌파로 전환됐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지난 9일에도 김 대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제39차 강남율곡포럼에서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에 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자 중에 거의 90%가 좌경화 돼있다 보니 우리 아이들까지 삐뚤어지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8개 검인정 교과서의 검증을 강화해 잘못된 것을 고쳐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역사학자 90%가 좌편향 됐다는 주장은 어느 누구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보수세력ㆍ보수정권이 붙인 꼬리표입니다. ‘좌파’를 태생적으로 혐오하는 보수세력에게 이 꼬리표는 강력한 ‘확신’으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좌편향이 아니어도, 좌파가 아니어도 역사학들에게는 이제 떼어낼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됐습니다.

▦99.9=역편향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면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편향적인 검정교과서 집필진이 정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며 국정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별 학교가 갖고 있는 교과서 선택권이 배제된 것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정단체(전교조겠죠) 소속의 교사들 중심으로 자신들 사관과 다른 교과서는 원천적으로 배제시키고,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20여곳의 학교에 대해서는 실력으로 저지하고 있다”며 “전국에 2,300여개의 고등학교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말입니다.

이는 황 총리를 비롯한 정부와 여당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우편향, 친일ㆍ독재 미화 논란을 낳은 교학사 교과서만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교과서이고 나머지 7종 교과서는 전부 비정상적인 교과서인 것입니다. 이 말로 인해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0.1%의 정상과 99.9%의 비정상’ 교육이 이뤄지는 것으로 치부됐습니다.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교과서를 통해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비정상적인 시험을 치른 것이 됩니다.

황 총리의 말마따나 적어도 고교 20여곳에서는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해보죠. 그래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율은 0.87%에 불과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시장에서 버림받은 교학사 교과서를 살리기 위해 견강부회 하다 보니 결국 ‘역편향’적 시각만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들끓습니다.

▦100=공약 이행?

“반드시 승리해서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강조했던 말입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국민 행복의 새 시대”를 이야기했습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첫 과반(51.6%) 득표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 대통령이 반대했던 국민들까지 포용하겠다는 담대함으로 표현된 숫자가 ‘100%’ 대한민국이라 여겨졌습니다.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서 100%의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 최고 책임자의 그런 노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불가능하다는 100% 대한민국은 현실에서도 확인됩니다. 3년째 후반에 접어든 현 정부를 보면 통합은커녕 되레 갈등이 더욱 노골화된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입니다. 청년실업과 심각한 취업난, 금수저와 흑수저로 나뉜 양극화 심화, 2%대 저성장, 개혁이라기보다 개악에 가까운 노동법개정 등으로 인해 ‘헬조선’(지옥이라는 영어 hell과 조선의 합성어)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은 이를 대변합니다.

절대 이뤄질 가능성조차 없는 100% 대한민국 약속은 의외의 분야에서 이행됩니다. 바로 역사교육에서입니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현재 중학교 9종, 고등학교 8종인 검정 역사교과서는 2017년이면 100% 국정화돼 교육현장에 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드높은 반대여론도 수많은 이견도 100%에 묻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역사학자는 국정화 논란 과정을 돌아보며 “0.1%를 100%로 바꿔버린 것”이라며 “100% 대한민국 약속을 역사교과서로 이행할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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