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의 ‘최소한의 조건’으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19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주한일본대사관(현재 재건축중)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말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청구권이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소녀상 철거가 조기타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뜻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소수 배석자만 참석한 정상회담의 초반부 회의에서 이 같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일단 소녀상 철거 요구에 응하면 2007년에 해산한 아시아여성기금의 후속사업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총리가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선택지로 둘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은 군위안부 피해자 구제책으로 일본이 1990년대에 만든 기금이다. 소녀상 철거 요구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교당국 국장급 협의에서도 다뤄졌다고 한다.
앞서 교도(共同)통신도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사실상 위안부협상 ‘조기 타결’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고 보도한바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정부가 한국정부로부터 소녀상 철거에 대한 확약을 얻은 다음 아시아여성기금 후속사업 예산(2014회계연도 기준 약1,300만엔ㆍ약1억2,000만원)을 늘리는 등의 방안으로 최종타결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국제사회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문제 공조 움직임을 가장 경계하면서도, 국제 여론을 의식할 때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세계 곳곳에 설치되고 있는 소녀상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도 올 9월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소녀상은 일본의 폭력성을 상기시켜 대외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내 우익들은 전세계에서 소녀상 설치가 확대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아키바 겐야(秋葉賢也) 전 자민당 외교부 회장(현직 중의원)은 다음달 1∼4일 샌프란시스코시를 방문해 소녀상 설치 반대 설득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총리관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화파인 외무성 측은 전날 일본시민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최종해결은 피해자의 수용여부에 달려있다”는 인식에 일정부분 공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5년 법적 해결이 종결됐다는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문제가 타결될 수 없다는 현실엔 동의하는 셈이어서 표면적인 강경입장과 달리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정부는 소녀상과 관련해 지난 12일 “민간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라며 “철거요구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못박았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중심이 돼 시민모금으로 2011년 12월 설치됐다.
이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한일 정상 단독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조 대변인은 "양국 정상간 협의 내용 상세를 밝히는 것은 자제하고자 한다"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에서 이렇게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보도가 잇따르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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