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교육부터 모바일 마케팅까지
현장 중심 프로그램에 호응도 높아
“‘내가 산 옷’이라고 하면 어떻게 말할까요?” “워어 마이 더 이푸.”
지난 16일 오후 7시쯤 서울상공회의소 중구상공회 5층 강당. 40~60대 남녀 50여명이 젊은 강사의 질문에 서툰 중국어지만 또박또박 답하고 있었다. 아직은 중국어 성조 변화가 익숙하지 않아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수업이 즐거운 듯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중구 남대문시장과 삼익패션타운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로 밤 장사를 하러 가기 전 일주일에 사흘씩 짬을 내 이곳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10월말 수업을 시작, 아직은 중국어가 생소한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하는 것이라 배우는 속도는 더뎠다. 하지만 열의만큼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바쁜 와중에도 수강생 대부분이 빠지지 않고 강의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삼익패션타운에서 29년째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는 이명옥(59)씨는 “요즘 상점을 찾는 손님들 중 20% 정도가 중국인인데 가이드가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아 무척 답답했다”면서 “일반 학원과 달리 세일즈에 특화한 강의라 우리 같은 상인들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중국어 강의는 서울 중구가 “상인이 변해야 전통시장이 산다”는 취지로 상인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한 ‘전통시장 상인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하나다. 중구는 지난달부터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등 지역 내 34개 전통시장 상인들 700여명을 상대로 전통시장 상인 아카데미를 실시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구청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상인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해 상인들이 가장 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와 영어 등 외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장사비법과 디자인 교육 등 실제 장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이태원 우사단길과 서촌 등에서 ‘감자집’을 운영하며 청년 장사꾼으로 유명해진 김연석씨를 초청해 장사 비법을 직접 들었다.
상품진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인근 백화점을 자주 방문하는 남평화시장 상인들은 가방디자인 전문강사인 전명숙씨를 초청해 4차례에 걸쳐 점포진열 컨설팅을 배우고 있다. 평화시장과 방산종합시장 상인들은 카카오스토리마케팅 저자인 임헌수씨로부터 급변하는 유통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모바일 마케팅을 교육받았다. 유명브랜드 디자인 카피 상품이 주력 물품이었던 남평화시장 가방 점포 상인들은 디자인 전문기관 강사로부터 독창성을 살리고 재료를 고급화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고 있다. 강사들은 상인들에 대한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의 성공한 전통시장을 찾아가 현장에서 교육을 진행하며 벤치마킹을 하기도 한다. 현장중심 교육이다 보니 상인들의 호응도도 높다. 중구는 내년에도 전통시장 상인아카데미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한 상인은 “재래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손만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며 “상인들이 스스로 고객을 끌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이번에 마련한 상인아카데미는 시장 특성에 따라 상인들의 요구를 반영해 프로그램을 마련한 만큼 전문적인 능력을 갖춰 전략적 마케팅으로 전통시장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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