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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입력
2015.11.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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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강남 쪽을 지날 때면 그 가방이 생각난다. 입주과외를 소개받고 찾아간 집은 논현동 어디였다. 일주일 남짓 머물렀을까. 학교를 마치고 그 집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기 싫었다. 옷가지와 책 몇 권이 들어 있던 보스턴백은 거기 남았다. 전화 한 통 넣을 주변도 없었으니,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억이다.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의 주인공 박민우는 명문대에 입학하여 ‘달골’이라는 산동네를 벗어날 계기를 만든다. 그는 이성 장군의 집에 입주과외 자리를 구했고, 믿음직한 선생 노릇으로 그 집의 신뢰를 얻는다. 70년대 격변기였지만, 한눈 팔지 않고 공부해서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의 메인스트림에 진입한다. 장성의 집에서 다리를 놓아준 결혼은 그의 계층 상승을 반석에 올린다. 그렇긴 해도 그 과정에 그가 버린 것, 잃은 것, 망각하고 배반한 것들이 왜 없겠는가. 소설은 그의 사회적 성공이 가려주지 못하는 공허와 실패, 착잡한 회한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어떤 세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건너뛴 시간은 어떻게든 돌아온다. 어떤 이들에게는 박민우의 돌아봄이 소위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변명쯤으로 읽히기도 하겠다. 그러나 어떤 변명은 들어줄 필요도 있다. 거기 얼마간 정직한 자기성찰이 담겨 있다면 더욱 그럴 테다. 박민우는 이렇게 말한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세대간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는 그런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무슨 포 세대’라는 명명의 가벼움과 무책임함은 그 갈등의 정치경제학과 역사적 국면을 은폐하면서 불신과 경멸, 단절의 감정만을 교묘하게 부추기고 있다. 젊은 세대는 앞선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있을 수 있는 경험과 지혜의 전수마저 거부한다. 앞선 세대는 그들이 지나온 구간이 특별하다고 믿었지만, 정작 도착한 곳이 허방이란 사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무책임하달 수 있겠지만 정말 몰라서일 수도 있다. SNS에서 접하는 세대간 골의 깊이는 합리적인 대화의 가능성조차 봉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황석영의 ‘해질 무렵’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대간 대화의 이상한 방식은 현실의 곤란과 곤경을 비스듬하게 투영하면서 철문이 닫히기 직전의 짧은 온기나마 붙잡아두려는 작가의 안간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에는 박민우 외에도 한 명의 화자가 더 등장해 장(章)을 바꿔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정우희라는 스물아홉 살 여성이다. 그녀는 소극단에서 일하는 초짜 극작가 겸 연출가다. 밀리기 일쑤인 반지하방 월세며 생활비는 주 닷새 편의점 야간 알바로 메워나간다. 당장의 하루하루가 버겁지만, 또 나름대로 살아간다. 정우희는 어쩌다(피하고 싶지만 우리는 얽혀 있다) 박민우와 그의 ‘달골 시절’ 첫사랑이었던 한 여인 사이에서 메신저를 자임하게 되고, 두 사람은 이메일로 연결된다. 물론 메일의 발신인은 그 여인으로 되어 있다. 세대를 격한 두 사람은 그렇게 박민우 세대의 그늘이기도 했던 한 여인의 아픈 생애를 매개로 희미하게 접속된다. 두 사람은 스치듯 두 번 만난다. 정우희는 말한다. “그는 과거를 향하여 앉아 있었고, 그의 과거가 나의 현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풍경일 테지만, 아프다. 두 사람은 아직 그들 각자의 이야기로는 만나지 못했다. 소설은 여기에서 멈추어 있다. 아마 멈추어야 했으리라.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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