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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한 벌 파는 게 아파트 파는 것보다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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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한 벌 파는 게 아파트 파는 것보다 힘드네요”

입력
2015.11.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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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부터 지하상가까지 ‘세일 중’

요즘 정부는 줄어드는 수출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 수출진흥책 마련에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수출 못지 않게 추락하는 소비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 이를 조금이라도 녹여보고자 백화점부터 지하상가까지 제 값을 깎는 할인 경쟁 중이다. 과거에는 절대 할인 품목에 나올 리 없는 겨울 신상품부터 명품까지 할인 대열에 동참했다.

지난달 국가적 쇼핑행사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가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창사기념할인과 브랜드 할인을 잇따라 벌였고 13일부터 해외 명품들의 재고 정리를 위한 할인을 시작했다. 20일부터는 민간 차원의 대규모 할인 행사 ‘K-세일 데이’를 벌인다. 그야말로 요즘 대한민국은 백화점이 사흘에 하루 꼴로 할인을 하는 세일 공화국이다.

‘재고는 안고 있어야 걸레밖에 안 돼’…신상도 세일

겨울 정기세일을 앞둔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에서는 브랜드 세일이 한창이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겨울 정기세일을 앞둔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에서는 브랜드 세일이 한창이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할인 행사 중인 18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9층. 한 여성 의류 브랜드는 32만9,000원짜리 신상품 코트를 50% 넘게 할인한 15만9,000원에 판매했다. 판매직원은 “들어온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신상품“이라며 “정상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할인한다”고 말했다.

평소 할인행사에 참여하지 않던 지방시, 끌로에, 돌체앤가바나 등 콧대 높던 명품 브랜드도 할인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김지은 해외패션부문장은 “경기 침체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까지 겹쳐 재고 소진 기회가 지난해보다 줄어서 할인행사에 참여하는 해외 브랜드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고품은 갖고 있어봐야 걸레밖에 안 된다’는 게 통설인 의류업계는 유독 출혈 경쟁이 심하다. 신상품 마저 재고 신세를 면하기 위해 내놓자마자 할인을 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는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신상품인 54만1,900원짜리 남성 구스다운 재킷을 반값 이하인 24만7,900원에 팔고 있다.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재고를 만드는 것보다 80% 할인이라도 해서 파는게 낫다”며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는 할인기간이 더 길고 할인폭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서민상가들도‘노 마진’ 초저가 할인 경쟁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의 한 의류 매장에서 모든 제품을 초저가인 1.900원에 팔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의 한 의류 매장에서 모든 제품을 초저가인 1.900원에 팔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서울 영등포역 근처 지하상가는 경쟁하듯 더 싸게 판다는 문구가 상점마다 어지럽게 붙어있다. ‘폭탄 세일’ ‘원가 세일’을 넘어 2,900원짜리 가방과 구두, 3,900원짜리 티셔츠도 있다. 상점 대부분은 5,000~1만원대 물건을 주로 팔고 있다. 1978년부터 이 곳에서 옷 장사를 한 최영문씨는 “예전에 5,000~1만원짜리 옷은 주로 미끼상품이었고 가게에서 2만~3만원짜리를 팔았다”며 “이제는 점포 안에 있는 것도 전부 1만원이며, 비싸야 2만원을 넘지 않는 가게들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8년 전부터 이곳에서 남성 의류를 팔고 있는 김창호씨는 “장사가 되지 않는 날은 하루 종일 일해서 4만원을 벌었다”며 “옷 한 벌 파는 게 아파트 파는 것보다 힘들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초저가 세일 중인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모습.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초저가 세일 중인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모습.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문제는 반복되는 할인행사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생각과 함께 가격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원 김지선씨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경우 꼭 할인행사를 기다린다”며 “할인행사를 너무 자주하니 할인 가격도 싼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도 소비 촉진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썼다는 평가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소비심리를 살려 실제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소득이 정체돼 있고 가계 부채와 노후 준비, 일자리 문제에 대한 불안 때문에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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