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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보로 참사 이후... 영국 법원 최초 안락사 허용

입력
2015.11.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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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랜드(1970~1993)
토니 블랜드(1970~1993)

1989년 4월 15일 오후 3시, FA컵 준결승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경기가 열린 잉글랜드 셰필드 힐스보로 스타디움. 관중들은 킥오프 15분 전까지는 경기장 골대 뒤편(리핑 레인)에 자리 잡고 앉는 게 규정이지만 그날따라 도로 공사 때문에 늦게 도착한 팬들이 많았다. 경기 시작 후로도 사람들이 밀려들자 안내요원들은 경찰 허가 하에 회전문 대신 일반 게이트를 열었고, 비좁은 공간은 일시에 인파에 밟히고 쓰러지고…, 아수라장이 됐다. 경기는 시작한 지 6분 만에 중단됐다. 리버풀 팬 96명이 숨지고 766명이 부상 당한 ‘힐스보로 참사(Hillsborough Disaster)’였다.

참사 직후의 힐스보로 스타디움 .게티이미지
참사 직후의 힐스보로 스타디움 .게티이미지

힐스보로 참사의 96번째(마지막) 희생자인 토니 블랜드(Tony Bland, 1970~1993)는 사고로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PVSㆍPersistent Vegetative State) 상태로 근 4년을 지내다 93년 3월 3일 숨졌다. 그의 죽음은 영국 법원 판결로 연명장치를 떼고 안락사한 최초의 사례였다.

1989년 8월 병원 측은 블랜드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물과 음식을 공급하는 연명장치를 떼어내자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3년 넘게 의식 없는 아들을 지켜봐 온 블랜드의 부모는 의료진의 판단에 동의했다. 법률 자문이 시작됐고, 영국 사회는 안락사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가열됐다. 의사에 대한 살인죄 적용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 시작됐다.

3년여 뒤인 1992년 11월 19일(오늘), 런던 법원은 영국 사법사상 최초로 연명장치 제거를 허용한다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인 가정법원장 스티븐 브라운은 “환자가 코마상태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이성적인 가능성이 없다”며 판결 이유를 밝혔고, 블랜드의 부모는 “다행스러운 판결”이라며 반겼다. 안락사 반대운동 단체들은 영국 상원(2009년 영국 대법원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종신 상원의원 12명이 상고심을 담당했다)에 항소했다. 상원이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하는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은 93년 2월이었다. 2월 22일 토니 블랜드의 연명장치가 제거됐다. 소극적으로나마 영국 법원이 안락사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지난 9월 영국 의회 앞 시위에 나선 조력자살 지지 시민들. oxford human righes hub.
지난 9월 영국 의회 앞 시위에 나선 조력자살 지지 시민들. oxford human righes hub.

영국 의회는 지난 9월 치유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살 법안’심의를 시작했다. 독립적인 두 명의 의사가 6개월 시한부로 판정한 말기 환자에 한해, 환자와 가족의 동의 하에 죽음에 이르는 약을 처방할 수 있게 하는 법안. 앞서 5월 스코틀랜드 의회는 같은 법안을 82대 36으로 부결시킨 바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종교인들의 반발이다. BBC는 영국성공회 조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법안이 통과되면 영국은 법과 윤리의 루비콘 강을 건너는 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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