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어귀에서 사진을 한 장 주웠다. 일고여덟 살쯤 됐을까.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미소짓고 있었다. 하단엔 ‘1983. 8.’이라 찍혀 있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공을 차던 학교 운동장 모습이 갑자기 선연해졌다. 사진 속도 학교 운동장 같았다. 사진 상태도 양호했다. 뒷면도 깨끗했다. 왜 버려져 있는 걸까. 지갑 같은 데 넣고 다니기엔 사진이 컸다. 흘린 지 오래된 것 같지도 않았다. 공연히 주위를 둘러봤다. 금방이라도 누가 사진을 찾으러 골목을 살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골목은 한산했다. 사진 속 아이는 지금 마흔 정도 되어있겠지. 그러나 나도 그녀도 서로를 알지 못한다. 32년이 지난 지금 아마도 살아 있을 테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마주친 그녀는 영원히 일곱 살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그는 사진 속 모습과 똑 닮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더 자세히 살폈다. 이상한 기시감이 일었다. 어쩐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여자를 닮은 것도 같았다. 누구일까 곱씹어봤다. 예전에 사귀었던, 지금은 마흔 근처에 다다랐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장담할 순 없다. 기분이 묘했다. 사진을 한참 들고 다니다가 근처 우체통에 넣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주소도 연락처도 없는 32년 전의 여자아이. 제대로 집을 찾아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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