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래미가 얼마 전 두 돌 지났어요.”
근황을 물었는데 이런 답이 돌아온다. 연극부터 뮤지컬 음악극 창극까지 다양한 작품을 함께 만들며 공연계 대표적인 콤비가 된 서재형(45) 한아름(38)씨다. 듀마의 ‘삼총사’를 비튼 이미지연극 ‘죽도록 달린다’(2004년)를 통해 각각 연출가와 극작가로 데뷔한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고 재작년 첫 딸을 낳았다. 국립창극단이 2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국립극장에 올리는 창극 ‘아비, 방연’은 이런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신작. 두 사람이 지난해 처음 만든 창극 ‘메디아’가 모성애를 강조한 작품이라면, 신작에서는 조선시대 계유정난을 모티프로 부성애를 불러낸다.
17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첫 인상이 좋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본이 좀 이상했죠. (아내는) 프랑스에서 이미지극을 전공했고, 저는 리얼리즘에 집중했을 때니까.”(서재형)
이후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 ‘릴레이’까지 대박을 터뜨렸지만 작품 하나 만드는데 예사로 70~80번을 뜯어고치며 “다시 만나면 인사는 하자”는 사이가 됐다고. 감탄사 하나까지 다시 써달라는 ‘트리플 소문자 a’ 남자와 여주인공 머리채를 잡으며 “작품 컨셉트 맞춰 자르라”고 호기를 부린 ‘대문자 비B’ 여자는 ‘왕세자 실종사건’ 재공연 때 연애를 시작했고, 여자친구 아버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 날짜를 잡아버렸다.
두 사람이 입지를 굳히면서 부침도 겪었다. 작년 연극 ‘메피스토’가 루마니아 라두스탕카 시비유 국립극단의 2007년 ‘파우스트’와 설정이 흡사하다는 의혹을 받은 것. 두 작품은 고전 ‘파우스트’를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의 관점으로 비틀어 여배우가 악마를 연기한다. 한 작가는 “원래 메피스토를 남녀 또는 창극과 연극의 두 배우가 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가 배우 일정이 틀어지면서 여배우 한 명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두 작품을 함께 본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다른 작품인데 무슨 대응을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작품에 매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원작 비틀 때는 난도질을 해야겠다(웃음)는 생각도 했고요.”(서재형)

신작 ‘아비, 방연’은 단종을 모시다 계유정난 후 그를 귀양지로 호송하고 사약까지 바쳤던 실존인물 왕방연을 주인공으로 한 팩션 창극이다. 어떤 역사책에도 출생과 사망 기록이 없어 ‘난도질’에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기록에서 사라진 자들이 보인다”는 두 사람은 역사서를 공부하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단종의 충직한 신하였던 왕방연이 딸을 살리기 위해 주군을 저버리게 되는 비극으로 풀어낸다. 국립창극단원 출신인 국악계 스타 박애리가 작창을, 작곡가 황호준이 음악을 맡았다. “사회 불의에 불끈하지만 항의하기보다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이 99%죠. 하지만 이 사람들이 변절자나 이상한 사람인가요? 이런 지점을 건드려 보고 싶었어요. 가족 때문에 다른 손(세조)을 잡지만 또 한편 잡았던 손(단종)은 놓지 않는 자의 이야기요.”(서재형)
부부 콤비로 ‘서로 무서운’ 관계가 됐지만, 직언을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 작가는 “신작 첫 대본을 보고 연출이 한 말이 ‘큰일 났네, 한 작가. 망하겠네. 이게 드라마가 돼?’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본은 40번째 ‘고치고 있는 중’이다. “왕방연이 딸과 절개 중 무얼 택할지 51대 49쯤 아슬아슬하게 갈등하는 걸 표현하는 게 관건이에요. 마지막에 왕방연이 딸을 업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다듬는 중인데, 스태프들도 의견이 갈려요. 자식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 없는 사람들은 죽을 거다 하고요. 저요? 공연이 너무 소중하지만 저도 딸을 택하지 않을까요?”(서재형) (02)2280-4114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 (성신여대 국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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