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게임 패자들의 운명은 비참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친 박근혜계 인사들은 한나라당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진영 좌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도 피하지 못한 공천학살이었다. 박근혜는“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가슴을 쳤다. 그러나 친박계 인사들은 굴하지 않고‘친박연대’(대표 서청원)라는 정당을 창당해 총선에 뛰어들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무성 등도 ‘친박 무소속 연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 박근혜는 한나라당에 남았으면서도 “살아만 돌아오라”며 당 밖의 그들을 전폭 지지했다. 노선, 이념이 아닌 특정 인물과의 연대를 표방한 정당은 헌정사에 유례 없는‘희극’이었지만 그게 통했다. 선거결과 친박연대는 지역 6석, 비례대표 8석 등 14석을 얻었다. 친박무소속연대는 12명의 당선자를 냈다. 친박연대는 정당투표에서 13.3%를 얻어 자유선진당(7.5%)의 두 배 가량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근혜 마케팅을 이용한 친박계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에 복당해 박근혜 집권의 토대가 되었다.
▦ 친박연대를 벤치마킹한‘친반(親潘)연대’라는 정치조직이 출범했다. 한창 차기 대선주자로 정치적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유명세에 기댄 ‘정치 떴다방’냄새가 짙다. 6일 중앙선관위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서까지 냈지만 실체는 모호하다. 대표로 이름을 올린 장기만(62)씨와 김윤환(57)씨는 경북 안동 출신 선후배로 각종 선거에 출마했으나 두드러진 경력은 없다. 하지만 20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반 총장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고 당원가입을 유도해 내년 총선서 200석을 얻겠다고 큰 소리다.
▦ 정작 반 총장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난감한 표정이다.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씨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유엔사무총장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게 자중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이 개헌 필요성과 함께 ‘반기문 외교대통령’이 가능한 얘기라고 하는 판이니 그들만 탓할 것도 없다. 반 총장의 평양방문이라는 대형 이벤트와 맞물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반기문 마케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정치희극은 친박연대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