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실리콘 반도체를 뛰어넘는 차세대 반도체로 꼽혔던 그래핀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고 있다. 2010년 이를 발견한 영국 과학자들이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으며 학계 및 산업계의 기대를 모았지만 본질적 한계 때문에 반도체 개발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최근 속속 제기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노벨물리학상 수상도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다”며 지적하고 있다.
18일 과학계와 전자업계에 따르면 그래핀의 전기가 너무 잘 통하는 특성 때문에 애초 기대와 달리 그래핀 자체만으론 실리콘을 대신할 반도체 소재로 개발하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작동 명령에 따라 전기가 통하거나 차단돼야 하는데 그래핀의 경우 차단되지 않고 전기가 항상 흘러 오히려 문제가 된다. 이에 과학자들은 반도체 대신 에너지 저장 소재 등 다른 용도의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핀은 연필심 원료인 흑연을 일부 떼어낸 것이다. 두께가 약 0.2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불과한 그래핀은 구리보다 전기가 10배 잘 통하고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 속도가 100배 빠르다.
이런 장점 덕분에 그래핀을 발견한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진은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 직후 그래핀이 곧 실리콘을 대체할 것이란 예상도 쏟아졌다.
이후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전기가 너무 잘 통하는 그래핀의 특성을 제어하기 위해 이물질을 첨가하고 구조를 변경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으나 대부분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 교수는 “그래핀은 산업용 전자소재가 갖춰야 할 최소한 요건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며 “노벨상 수상 등 학문적 의미는 컸지만 산업으로 활용하기에는 거품이 있었다는 게 학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실리콘을 기반으로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래핀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 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산업계와 학계의 이 같은 변화에 그래핀 연구자들이 반도체 아닌 다른 분야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지나 축전기 같은 에너지 저장기기에 활용하는 연구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는 “그래핀을 섞은 새로운 다공성 구조물을 이용해 리튬이온전지보다 약 1만배 빠른 속도로 충전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용 에너지 저장기술을 개발했다”며 “국내 기업과 상용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한 화학기업 관계자도 “다양한 기초소재 분야에 활용 가능성을 타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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