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사업권 5년마다 재입찰 문제 없나
17일 오후, 관세청의 시내 면세점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해 내년에 문을 닫게 된 서울 잠실의 롯데 월드타워 면세점은 평소와 다름없이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겉으로 웃으며 손님을 맞는 직원들의 속내는 달랐다. 10년째 근무 중인 김가을(가명ㆍ36) 액세서리매장 책임매니저는 “이번 정부의 면세점 심사 결과를 보니 5년마다 일자리를 걱정하게 생겼다“며 “정부가 이상하게 법을 바꿔 5년짜리 시한부 일자리를 만든 셈”이라고 한탄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부가 대기업의 면세점 독과점을 막기 위해 2013년 관세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도 5년 마다 사업 허가 심사를 다시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면세점 사업은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5년 시한부 사업이 돼버렸다.
이 같은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이번 심사 결과다. 지난해 10월부터 3,000억원을 들여 월드타워점을 확장 공사한 롯데는 모든 재투자가 물거품이 됐다. 1,000억원을 들여 서울 광장동 워커힐 면세점을 재단장한 SK네트웍스도 23년간 공들인 사업을 고스란히 접게 됐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당장 롯데 월드타워점 직원 1,300여명과 SK네트웍스 워커힐 면세점 직원 906명의 고용이 불안한 상황이다. 롯데는 10개 계열사들이 나눠서 월드타워점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공언했지만 낯선 환경과 낯선 업무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SK네트웍스는 이마저도 결정하지 못했다. 신세계, 두산 등 새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이 당장 필요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데려갈 수 있지만 보장된 것은 아니다. 워커힐 면세점에서 15년 근무한 최화순(가명ㆍ39) 매니저는 “위에서 결정된 것도 없고 어느 기업이 나서서 콕 찍어 채용을 보장해 준 것도 아니어서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타격도 심각하다. 롯데 월드타워 면세점의 일부 중소 입점업체들은 내년 판매를 위해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비용을 들여 매장 공사를 다시 했는데 이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또 롯데에서 선 주문한 8개월치 제품을 공급한 중소업체들도 발을 구르고 있다. 롯데는 이를 보상해 주겠다고 했지만 중소업체들로서는 중요한 장기 거래선을 잃은 셈이다. 롯데월드타워점에 장신구를 공급하는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번 심사를 진행하면서 대기업들만 본 모양”이라며 “그 뒤에 가려진 수 많은 중소 협력업체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고 분노했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 투자를 할 수 없다. 특히 면세점 사업은 전세계 관광객 유치가 걸린 문제여서 해외 면세점들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로 꼽힌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면세점 사업 허가 심사를 지켜본 뒤 국내 면세점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기대하기란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 경쟁력을 쌓기 위한 재투자는 고사하고 당장 몇 달 뒤 제품 주문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를 고민하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이번에 새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계와 두산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시내 면세점 재허가 방식이 계속되면 신세계와 두산도 5년 뒤 똑 같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신세계와 두산 주가는 면세점 유치 이틀만인 이날 일제히 하락했다. 전일 대비 신세계는 0.38% 내린 26만3,500원, 두산은 3.85% 떨어진 11만2,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재완 한남대 무역학과 교수는 “신세계나 두산도 5년 단위 사업자 선정 방식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번 심사가 국내 면세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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