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 상태로 민중총궐기 주도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피신 확인
종교시설 은신처 제공 논란 제기
수배 상태로 지난 14일 서울 도심의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로 피신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종교시설의 은신처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종교시설은 전통적으로 공권력의 추적을 피하려는 시국사범이나 수배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이른바 현대판 ‘소도(蘇塗ㆍ삼한시대 죄인이 도망치더라도 잡아갈 수 없는 특별구역)’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재야ㆍ노동단체에게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 서울 명동성당이 대표적이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사참사 때도 시민단체 인사 3명이 같은 해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약 4개월간 명동성당에 서 투쟁을 지속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수배자들이 주로 몸을 의탁한 곳은 조계사다.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벌이던 농성단이 조계사로 피신해 120일 넘게 버텼고, 2013년 12월 철도파업을 주도한 철도노조 지도부 역시 스스로 연행에 응하기 전까지 20여일 간 조계사에 머물렀다.
수배자들이 최후의 피난처로 종교시설을 택하는 이유는 종교의 특수성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종교시설은 일반시설물과 똑같이 처리하기 어려워 교단이나 종단에서 허락하지 않는 이상 공권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종교계도 무조건적으로 수배자들을 품는 추세가 아니다. 명동성당은 2000년을 전후해 크고 작은 노조들의 잦은 농성으로 신도들의 불편이 늘었다며 이들의 퇴거를 요청하는 등 강경한 자세로 돌아섰다. 2002년 3월에는 조계사 측 요청으로 경찰이 조계사 법당에서 농성 중이던 발전노조원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날 조계사를 방문한 한 신도도 “과거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종교시설이 국가폭력 희생자를 받아주는 게 당연시됐지만, 지금의 민주노총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 처리를 놓고 조계사와 경찰은 모두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조계사 측은 자승 총무원장이 해외 출장 중인 데다 종단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도 조계사 외곽에 경찰력을 배치했을 뿐 “조계사 차원에서 한 위원장을 퇴거 조치하지 않는 이상 강제로 검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