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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기술보다 정성... 순위는 의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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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기술보다 정성... 순위는 의미 없어

입력
2015.1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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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권 셰프가 코릿 갈라디너에서 선보인 애피타이저 ‘블루핀 참치 카르파치오와 바닷가재’. 어윤권 셰프 제공
어윤권 셰프가 코릿 갈라디너에서 선보인 애피타이저 ‘블루핀 참치 카르파치오와 바닷가재’. 어윤권 셰프 제공

얼마 전의 일이다. 짧지 않은 요리인생에 불현듯 우울함이 덮쳐왔다. 스폰서와 파워블로거의 입김에 좌우되는 맛집 순위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건만, 힘이 쭉 빠졌다. 내 순위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며 스스로를 위안해 봐도 전혀 기분이 좋다거나 보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를 제외하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왜 내가 끼어있는 걸까, 우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차에 공신력 있는 언론사가 합류해 현장지기 위주의 제대로 된 맛집 평가를 한다고 해 기대가 컸다. 결과는? 역시 그 판에 그 선수. 나의 순위는 4번째. 매우 슬펐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최측에서 내게 갈라디너를 제안해 온 것이다. 갈라디너, 오로지 그 한끼만을 위한 유니크한 디자인과 기술, 콘셉트, 레퍼토리, 프레젠테이션, 뚜렷한 명분과 시간, 노력, 고단함이 수반되는 동시에 엄청난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짓누르는, 요리사로서는 영광과 보람, 절망과 좌절을 동시에 맛봐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물론 개의치 않고 일반 코스메뉴를 갈라로 생각하는 요리사도 많기는 하지만.

이번 갈라디너에 대한 평가는 그래도 기록면에서는 공정하게(영상물, 사진 등) 남기에 내심 기술적 우위를 확실히 보여주리라 생각하고 수락했다. 1, 2, 3등과 기술로써 확연한 차이를 보이겠노라, 지글지글 의욕이 솟구쳤다. 사전 답사차 갈라디너 현장 호텔을 방문했다. 그런데, 아뿔싸! 엄청난 절망감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호텔에는 이미 갈라디너 전날과 당일에 1,000명 이상의 식사 예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같이 진행해야 하는 일정이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주최측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주최측 관계자의 답변은 나를 더욱 더 분노하게 했다. “셰프님, 이런 기회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그리고 요리가 중요하지 그밖에 여러 환경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요리만 좋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봐요.”

덤덤했다. 냉수 한잔 마신 후 잠시 생각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등수도 마음에 안 드는데 절망적 상황의 갈라디너라니….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잘못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와 함께 갈라디너를 맡은파올로 데 마리아 셰프가 보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참담해야 할 호텔 요리사들도 보였다. 그런데 왜 저들에게선 희망과 기대, 즐거움이 보이지? 뭐지?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메뉴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요리로 가자!’ 기물과 꾸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까짓것! 배워 익힌 갈라의 상식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준비작업을 해나가면서 과거의 잘못된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부끄러워졌다. 어느새 요리를 너무 기술적인 잣대와 상품으로만 보지 않았는가?

마치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순간 깨어 음식에 정성과 즐거운 마음을 담는 것이 부족했구나. 상위로 수상한 요리사들은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음식을 평가자들에게 전달했고, 평가자는 그 마음을 느꼈구나.’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묵묵히 수행하는 호텔 관계자들, 동료들을 보며 깊이 반성했다. 너무 이기적인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요리사 생활 초반에 느꼈던 그 느낌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말로는 초심, 초심 하지만, 정작 중요한 초심-기술이 부족해도 요리에 진심 어린 마음을 듬뿍 담는 것-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기술보다는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통한다는 점도 새삼 깨달았다. 나의 요리사 인생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더욱 성장한 미래를 맞게 된다면, 나는 이날의 요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만에서 감사로 전환된 코릿(KorEat) 갈라 행사의 요리를.

어윤권 ‘리스토란테 에오’ 셰프. 어윤권 셰프 제공
어윤권 ‘리스토란테 에오’ 셰프. 어윤권 셰프 제공

◆어윤권 셰프는?

1989년 요리에 입문, 포시즌스 밀라노 호텔의 셰프 드 파르티(조리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리스토란테 에오’의 오너셰프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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