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테러조직의 원조 격인 무자헤딘은 미국의 지원으로 급성장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려는 무슬림 전사들이 각 국에서 몰려들었다. 소련의 아프간 지배를 막아야 했던 미국은 무자헤딘에 자금과 무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는 4,000개에 달하던 무자헤딘 그룹 중 하나에 불과했다. 거대 테러조직의 발호는 미소냉전시대 대리전의 산물인 셈이다.
▦ 냉전이 끝나 스폰서 지원이 사라지자 무장단체들은 재정자립을 위해 뛰었다. 무자헤딘은 미국이 지원한 무기를 팔아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판매한 무기 가운데는 당시 최첨단 무기인 스팅어 미사일까지 포함돼 있다. 아편 재배와 밀수도 주요 수입원으로, 전 세계 아편과 헤로인의 90% 이상이 아프간에서 생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아랍 지원국의 후원금을 종잣돈 삼아 섬유 수출부터 마약 밀수까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경제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경제조직체를 구축했다.
▦ 이슬람국가(IS)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단체로 성장한 데는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보다 월등한 자금력이 뒷받침됐다. 시리아의 유전지역을 장악해 석유 수출만으로 하루에 2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점령 지역 주민들에게 과세를 하고 농산물이나 공산품에도 세금을 징수한다. 외국인 납치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도 만만찮다. 인질의 출신 국가와 나이, 외모, 학력에 따라 몸값이 달라진다. 최근 발견된 IS의 회계장부에는 세입과 세출 항목은 물론 자살 테러 임무 한 건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산출돼 있다고 한다.
▦ 터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IS에 투입되는 자금줄을 끊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합의한 것은 ‘테러의 경제학’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마약의 최대 소비자이면서 무기의 최대 판매자다. 테러조직에 무기와 자금, 은신처를 직ㆍ간접적으로 제공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세계화의 골자인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테러단체들의 초국가화로 이어져 ‘양날의 칼’이 됐다”고 분석했다(‘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 서방국이 퍼뜨린 세계화가 테러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안겨 거꾸로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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