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출판사 민음사와 모바일플랫폼 카카오페이지, 영화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 3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선 마술사’를 책, 웹소설, 영화로 어떻게 탄생시킬 것인지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 각각의 장르에 대해 판권을 계약한 민음사, 카카오페이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날 회의 끝에 9월에 웹소설로 내보내고 11월에 책을 출간한 뒤 12월에 영화를 개봉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야기의 원작자는 소설가 김탁환과 방송사 PD 출신의 기획자 이원태씨. 두 사람은 지난해 창작집단 원탁을 결성, 올해 두 번째 결과물 ‘조선 마술사’를 내놨다. 원탁이 하는 일은 이야기를 가능한 모든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어 파는 것. 통상 크로스오버가 소설이나 영화로 먼저 만들어진 창작물을 다른 형태의 창작물로 변형하는 것이었다면, 원탁은 이야기의 얼개만 짜놓고 이를 시나리오, 소설 등으로 필요에 따라 직접 바꾼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야기 공장’을 꿈꾸는 두 사람을 책이 출간된 다음날인 11일 만났다.
“열하일기에 보면 박지원이 청나라에 갔다가 마술쇼를 보는 장면이 나와요. 거기서 눈이 확 뜨인 거죠. 그 시대에 길에서 마술쇼를 할 정도로 성행했다니 그럼 조선에도 그런 게 있지 않았을까?”(이원태)
‘조선 마술사’는 조선 궁중에 소속된 최고의 마술사 환희가 옹주 청명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옹주는 어김 없이 정략 결혼의 희생자가 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환희와 청나라 마술사의 위험한 마술 대결이 펼쳐진다.
두 사람이 이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2010년이다. 소설 형식의 초고를 쓴 뒤 이를 영화사에 보내 2011년 판권 계약을 마쳤다. 이후 웹소설과 책으로도 내기로 하고, 각 플랫폼에 맞는 형태로 고쳐 썼다. 소설과 시나리오는 많이 썼지만 웹소설 도전은 원탁으로서도 처음이다.
“모바일 웹소설은 그곳만의 독법이 있어요. 한 회 분량 안에 흥미를 끄는 부분이 들어가야 해요. 써놓은 소설을 쪼개서 올리는 식으로는 100% 실패하죠.”(김탁환)
문학성 중심의 종이책 소설과 대중성 중심의 웹소설 시장은 창작자와 독자가 완전히 분리돼 있어, 베스트셀러 작가라 해도 그 간극을 넘기 쉽지 않다. 김탁환 작가는 연재 전 강풀 만화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강씨는 두말 없이 등을 떠밀었다. “무조건 하세요. 웹툰도 처음엔 퀄리티가 낮았지만 좋은 작가들이 들어오면서 판이 커졌잖아요. 형이 들어가서 끌어 올리면 되죠.”
9월 30회 연재를 마친 ‘조선 마술사’는 첫 회를 시작하자마자 구독률 1위에 올라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다. 최종 구독횟수는 7만 건을 넘어섰다. 12월 개봉하는 영화에는 배우 유승호와 곽도원이 각각 조선과 청나라 마술사 역으로 출연해 마술 대결을 펼친다.
“저희한테도 이 모든 게 너무 새로운 경험이에요. ‘조선 마술사’는 모바일과 종이책, 영화가 팀플레이를 한 최초의 사례일 겁니다.”
이원태씨의 말처럼 원탁의 시도는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유례 없는 도전이다. 일단 시장에서의 성적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시나리오로 먼저 완성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은 7월 CJ E&M과 영화 계약을 맺었고 11월 민음사에서 책으로 나와 7,000부 가량 팔렸다. 내년에 나올 ‘아편전쟁’도 이미 책ㆍ영화 판권계약을 마쳤다. 판권 계약 타율로만 보면 100%다. 이씨는 “떠올린 이야기 10개 중 9개를 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컷 공부해서 만들어 놓은 이야기도 상당수는 버려요. 제 경우엔 (버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영화예요. 책 외에 다른 콘텐츠, 특히 영화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기준이 엄격해지고 바로 판단이 서더라고요. 대중의 호불호가 바로 나타나니까요.”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연출자였던 이원태씨가 대중의 감각을 가늠하면, 김탁환 작가는 한 줄짜리 발상을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세계로 바꾸는 데에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업무가 명확하게 분리돼 있기보다 서로 앞다퉈 아이디어를 내고 번갈아 가며 글을 쓴다. 김씨는 로맨스 전문, 이씨는 누아르 전문을 자처한다.
원탁은 자체 영화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 영화, 책, 웹소설에 이어 뮤지컬, 드라마 등 더 많은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도 언제든 환영이다. 이렇게 장르 고유의 고정관념이나 한계를 부수고, 광대한 콘텐츠 시장을 다 개척하겠다는 이야기꾼들의 패기가 만만치 않다.
“처음 원탁 아이디어를 냈던 2010년 전후만 해도 웹소설이나 웹드라마 같은 건 없었어요. 모바일 시장이 커지면서 콘텐츠가 다양해지니까 저희로선 천국이죠.” (이원태)
“‘소설의 적이 영화고 영화의 적이 소설이다’는 식의 구분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소설로 유입시킬 수 있어요. ‘모바일 때문에 소설이 죽는다’가 아니라 모바일에서 소설을 볼 수 있게 하면 되죠.” (김탁환)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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