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공천ㆍ선거 개입하는 박 대통령
국민과 의회 소통 레임덕 없는 오바마
대통령 힘은 국민 설득 능력에서 나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새나가듯 권력의 힘이 빠지는 레임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대통령은 없다. 권력의 단맛에 한창 취해 있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레임덕은 노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법하다. 헌법에 5년 단임제가 대못처럼 박혀있는 우리 정치상황에서는 허탈함과 상실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기 권력에 집착해 중임제 개헌을 외면한 이전 대통령들을 원망해본들 부질없는 짓이다.
역대 대통령은 예외 없이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과 맞닥뜨렸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직접적인 도화선은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였다. YS는 아들 김현철이, DJ는 김홍걸과 김홍업 등 두 아들이, 노무현은 형 노건평이, 이명박은 형 이상득이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아직 이렇다 할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엄습했으나 권력의 뜻을 거스를 의사가 없었던 검찰의 영민함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대통령 자신이 자식을 두지 않은 점도 있지만 철저한 동생들 관리도 전임자들과는 차별화된다. 주변의 부패로 인한 레임덕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박 대통령은 예외인 셈이다.
거의 맹목에 가까운 콘크리트 지지층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거듭된 실정과 뚜렷한 성과 없이도 30%에 이르는 묻지마 지지세력이 레임덕을 막고 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레임덕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 될 지 모른다며 흥분하는 것도 전혀 터무니 없지만은 않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고 권력도 때가 되면 스러지는 게 세상 이치다. 어차피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정해져 있고, 마지막 한 해는 일상적인 국정관리조차 여의치 않다. 권력의 속성과 민심을 감안하면 사실상 박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내년 4월 총선이 지나면 계절 바뀌듯 청와대 입김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 공은 당 대표 몫이다. 선거를 치르는 중심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김무성 대표다. 선거 승리에 박 대통령의 후광이 영향을 미쳤다 해도 조연이 주연이 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거둔 모든 선거 승리의 공이 자신에게 돌아갔던 점을 상기하면 된다.
박 대통령은 이런 순리를 따르지 않고 있다. 대놓고 공천에 개입하고 선거에 관여하더니 아예 판까지 흔들려 하고 있다. TK라는 특정 지역에서 친박이라는 특정 집단을 동원한 협량(狹量)의 정치에 매몰돼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선거 때마다 세력 확대를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으나 단 한 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다. YS는 레임덕을 피하려고 이회창 카드를 꺼냈다가 되레 탈당을 강요당해 스스로 당을 떠나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 24시까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호언하다 초라한 말로를 맞았다.
레임덕을 늦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면 국정의 추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런 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뒤 조기레임덕 전망이 많았으나 지금은 반대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쿠바와 국교정상화, 이란 핵 협상 타결, 대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등의 국정 업적을 이뤄낸 결과다. 이란 핵 협상만 해도 오바마는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한 의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동의를 얻어냈다. 국민과 의회를 상대로 한 소통으로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도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면 ‘불통’의 국정을 넘어서야 한다. 강행과 압박 대신 대화와 설득을 우선해야 한다. 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선거 개입 같은 독선적인 국정 운영방식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대통령의 힘은 권력 행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