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디젤 엔진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꿨다. 디젤차의 위상이 추락하며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차종으로는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차가 꼽힌다.
국내에서는 차체가 크고 실내가 넉넉한 중형 이상 하이브리드 세단의 인기가 높다. 강한 주행 성능과 효율적인 연비로 무장한 배기량 2,000㏄ 이상 하이브리드차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질주를 시작했다.
원조의 자존심, 렉서스 ES300h
토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ES300h는 지난달 492대가 팔려 전체 수입차 중 판매량 2위를 차지했다. ES300h는 상위 10위안에 꾸준히 포함됐지만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은 최근 몇 년간 없었던 일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9월 2016년형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한 것과 함께 독일산 디젤차의 몰락이 불러온 결과로 보고 있다.
올해 1~10월 ES300h의 누적 판매량은 3,701대다. 같은 기간 1,268대 판매된 원조 하이브리드 토요타 프리우스를 세 배 이상 앞서는 성적표다. 국내 소비자들은 하이브리드차를 고를 때 경제성만을 따지지 않고 성능과 편의성까지 원한다는 방증이다.
2.5ℓ 엔진이 장착된 ES300h의 복합연비는 16.4㎞/ℓ로 배기량이 500㏄ 적은 경쟁 하이브리드차들과 비슷하다. 하이브리드차 중 가장 용량이 큰 배터리가 들어가 전기 주행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ES300h에는 동급 최대인 10개의 에어백이 탑재됐고, 충돌 안전차체와 스크래치 복원 도장 등 첨단기술도 집약됐다.
세계 최고 하이브리드차 기술력을 갖춘 토요타는 중형 세단 캠리 하이브리드까지 인기가 동반 상승해 미소를 짓고 있다. 이달 초 출시된 2016년형 캠리 하이브리드는 1주일 만에 평소보다 약 4배 많은 200대가 팔렸다.
고성능 Q50Sㆍ고품격 MKZ
주행성능 보다 연비 향상에 초점을 맞췄던 수입 하이브리드차들도 고정 관념을 깨고 있다. 닛산의 고급차 브랜드 인피니티가 지난 6월 출시한 Q50S는 차체 크기가 2.2ℓ 디젤 엔진이 적용된 Q50과 같지만 3.5ℓ 엔진과 전기모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 364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은 5.1초로 스포츠카 못지 않다. 여기에 전자 신호로 방향을 조정하는 세계 최초의 지능형 조향 시스템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 등 신기술도 대거 적용됐다. 다만 고성능을 추구한 하이브리드차라 연비는 12.6㎞/ℓ로 높지 않다. 판매량은 토요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지난달에는 9월 대비 50% 이상 증가한 51대가 팔렸다. 인피니티 코리아는 판매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 이달부터 48개월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고, 배터리 보증기간을 업계 최장인 10년ㆍ20만㎞로 늘렸다.
미래에서 온 듯한 외관으로 유명한 링컨 MKZ 하이브리드는 묵직한 주행 성능과 우아한 디자인, 첨단 편의사양으로 무장했다.
운전석에서 기어 노브를 퇴출시킨 혁신적인 버튼식 변속 시스템, 노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각 바퀴의 충격을 분산ㆍ흡수하는 연속 댐핑 제어 서스펜션, 키가 없어도 비밀번호로 차문을 잠글 수 있는 시스템 등이 특히 돋보인다. 경제적인 운전을 하면 계기판의 듀얼 LCD 화면에 흰색 꽃이 피어나는 그래픽도 이색적이고, 제원상 토크 이상의 체감 가속력도 수준급이다. 지난달 MKZ 하이브리드의 판매량은 9월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48대였다.
국산 대항마 쏘나타ㆍK5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의 LF쏘나타 하이브리드는 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판매량은 663대로 국산ㆍ수입을 통틀어 하이브리드차 중 가장 많았다. 9월보다는 15%, YF쏘나타 하이브리드가 판매됐던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면 85% 늘었다. 올해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9,574대로 지난해(4,101대)에 비해 133%나 증가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최대 강점은 수입차보다 2,000만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그렇다고 배터리 용량이나 출력, 토크 등이 뒤지는 건 아니다. 연비 역시 16.8㎞/ℓ로 최고 수준이다.
이달 초에는 기아자동차의 신형 K5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원상 성능은 쏘나타와 거의 같지만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쏘나타와 함께 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쌍두마차가 될 전망이다.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에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토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이 사용하는 ‘복합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비해 구조는 간단하면서도 효율은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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