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내ㆍ외형은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물”
“도심 외관이 개성을 잃으며 사회적 비용 초래, 수요자 중심 건축”
도시를 떠올리면 먼저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이 생각난다. 그러나 건축물은 틀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건축물을 짓는 것은 모든 건축사들의 꿈이다. 다만 건축주의 요구와 비용, 상품가치 확보는 넘어야 할 산이다. 김용남(47ㆍ사진) 삼현도시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소형 공동주택(원룸, 오피스텔)을 통해 부산의 도시외관에 변화를 주고 있다. 세대별 옥상이 곧 타인의 마당이 된 ‘레지던스 엘가’(화명동), 건물 중앙부에 트임을 줘 층별로 소통시킨 ‘디온플레이스’(문현동), 23층 건물의 중앙부를 갈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건너편을 볼 수 있게 한 ‘베르나움’(해운대) 등이 김 소장의 손을 거쳤다. 대한건축사협회 부산건축가회 신인건축가상(2012), 부산다운 건축상(2008ㆍ2014ㆍ2015) 등 각종 수상내역은 그간의 노력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공동주택 외형이 독특하다
“외형을 앞세워 설계를 하지는 않는다. 건물의 외형은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인간이 건강 하려면 외부환경(자연)이 건물로 들어와야 한다. 안타깝게도 원룸과 오피스텔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외부환경과 단절된 경우가 많다. 고작해야 창문이 몇 개인지를 고민한다.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은 돈이 많아야 누릴 수 있고 원룸과 오피스텔은 저렴하다는 이유로 없는 것을 감수한다. 공급자 중심으로 건물이 만들어지다 보니 나타난 결과다. 부산지역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 80% 가량이 분양하는 건물이지만 소비자 선택의 폭은 한정돼있다. 역세권, 부대시설 등은 고려하지만 건축물은 보지 않는다. 도심 외관이 개성을 잃는 사회적 비용도 초래된다.”
-레지던스 엘가와 디온플레이스, 베르나움도 그런 측면에서 지어졌나
“레지던스 엘가의 경우 외부환경을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마당이라고 생각했다. 각 가구를 계단식으로 배치, 타인의 지붕이 나에게는 마당이 된다. 윗집과 아랫집은 마당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외부환경도 있지만 소통공간 역할도 한다. 문현동 디온플레이스는 똑같은 소형 공동주택인데 복도를 테라스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중복도(양쪽 방 사이 복도)는 어느 순간 스쳐서 지나가야 할 공간, 빨리 피해야 할 공간이 됐다. 옛날 같으면 집에 가는 길은 즐거웠다. 그래서 복도를 길처럼, 테라스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복도는 5개 층씩 지그재그로 연결되고 건물 내부 중앙을 틔워 층별 복도를 볼 수 있다. 베르나움은 건물 전면부가 60m 이상이라 2개동으로 나눴다. 각 동을 직선이 아닌 엇갈리게 쌓아 올렸고 이 부분에 엘리베이터를 놓아 유리창 너머로 반대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선호하는 건축적 언어는 무엇인가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이며 문장을 만들려면 필요한 단어가 있다. 건축적 언어도 마찬가지다. 건축의 요소가 들어가 건축적 언어가 된다. 어느 날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나가다가 건물을 봤다며 ‘김 소장이 짓는 거 아니요?’라고 하길래,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건물의 외형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마 건물의 ‘다공성(多空性)’ 탓인 것 같았다. 우리가 선호하는 언어는 다공성이다. 단순히 건물에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닌 외부환경을 건물에 집어넣는 과정이다. 최근 소형 공동주택 트렌드와는 다르다.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폐쇄적인 구조로 된 집이 늘고 있다. 밀폐해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연에서 소외되는 길이다.”
-건축주와 사용자를 설득해야 할텐데
“사업성을 극대화하려는 건축주들이 선호하는 건축물이 소형 공동주택이다. 당연히 임대ㆍ분양은 지상과제가 된다. 그런데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용자에게 좋은 건물이 분양이 잘 된다는 것이다. 설계 전 이와 관련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 사용자가 살고 싶고 들어오고 싶은 집이라면 임대도 잘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 다만 사용자 중심의 건물은 일반 건축물보다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 수익을 어떻게 담보하는가 하는 숙제가 남는다. 건축주들은 싸게 지어서 싸게 파는 것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수익을 좀 줄이더라도 단기간에 잘 팔릴 건물을 짓자고 설득한다. 또 건축주도 시장에서의 좋은 투자자 이미지를 가지려면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를 이해한다.”
-잇단 수상과 건축사사무소 확장으로 인정 받고 있다
“우리 일은 고상한 건축물을 짓는 게 아니다. 아마도 수상배경은 자본주의 극단에 있는 상업적 프로젝트에서 인간을 배려하는 노력을 이해해준 덕분인 것 같다. 건축사사무소는 2006년 직원 1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7명이다. 초기 4~5년 정도는 먹고 살 정도로만 완만하게 매출이 늘었다. 고객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대한 투자의 시기였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의 방향성(철학)대로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분양이 안되면 다시 지어주겠다고까지 말하면서 건축주를 설득했다. 지금은 건축주들이 찾아와서 설계를 의뢰하는 일도 많다. 직원들과 상시적으로 토론하기 위해서 규모는 최대 20명이 적정한 것 같다. 같이 있는 건축사들이 잘 돼서 독립하면 연대해서 부산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
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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