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이야기] 주말 TV
지난 토요일 새벽 한 케이블 채널. 프랑스와 독일 축구 대표팀의 친선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경기장은 파리 근교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가 왠지 느슨해 보였지만, 딱히 이상한 징후는 못 느꼈다. 0대0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8만 가까이 들어찬 관중들이 일제히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삼색기가 유난히 많이 펄럭거리는 게 특별하다 싶었다. 전반 막판 프랑스의 올리비에 지루가 선제골을 넣었다. 그러곤 하프타임. 한국엔 동이 트고 있었고, 나는 잠이 들었다가 정오 지나 깨어났다. 눈 비비며 TV를 켜곤 아연했다. 잠든 사이, 파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대여섯 시간 전 TV에서 봤던 축구장의 모습도 여러 번 등장했다. 동료에게 볼을 미루는 듯한 파트리스 에브라의 행동이 그제야 이해됐다. 실시간 화면으론 듣지 못했던 폭발음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식당과 공연장에서 학살이 이어졌다는 뉴스가 반복됐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잠들기 직전과 깨고 난 직후가 등 돌린 별개의 세계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넋 나가버린 토요일 저녁. 광화문 일대에서 백색가루에 공격 당한 사람들 소식을 들었다. TV로는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시 나는 잠을 설쳤다. 잠결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공포스러웠다. 선잠 끝의 일요일 오후, 하늘이 맑다. TV에선 깔깔대는 오락프로가 요란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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