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원 호봉제를 손본다. 은행권 임금수준이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은행권 평균급여가 타 산업보다 월등히 높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권에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합리적인 임금체계가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시작부터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 은행 수익성 하락에도 임금수준 '최고'
금융위원회는 금융권 성과주의 문화 확산을 위해 금융공기업을 대상으로 모범사례를 만들고 이것이 다른 민간 금융사로 확산되도록 유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호봉제 중심인 현행 은행원 임금체계를 연봉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은행원들의 임금체계도 이를 반영해 개편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012∼2013년 사이 55.3%나 떨어졌다. 반면 전체 산업 임금수준 대비 금융산업 임금수준은 2006년 129.7%에서 지난해 139.4%로 꾸준히 상승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산업의 호봉제 도입 비율은 91.8%로 전체 산업(60.2%)보다 훨씬 높다. 고과에 따라 차등해 호봉이 올라가는 비율도 낮고 기본급에 성과를 반영하는 정도도 낮다. 성과급은 개별성과급이 아닌 집단성과급의 형태가 많아 성과가 급여에 직접적ㆍ전면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적다. 은행의 수익성은 하락하고 있지만 성과와 연동된 임금체계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나설 경우 기업은행이 첫 시험대에 오를 공산이 크다. 일반 시중은행과 조직체계가 유사하고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기업은행의 1인당 평균 급여는 8,650만원이다. 타 업종과 비교해 매우 높은 편이다. 다른 시중은행도 기업은행과 비교할 때 동일 직급의 급여액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시중은행 경영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은행이 수익성 하락에 시달리는 가운데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하락에 따른 주주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는 명분도 갖췄다.
● 노조 "임금 삭감 우려, 업무 특성에도 맞지 않아" 강력 반발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일단 노조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 급선무다. 은행권 노조는 연봉제로 임금이 삭감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공격적 세일즈가 중요한 보험이나 증권과 달리 리스크관리가 생명인 은행의 업무 특성상 호봉제가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성과주의 보상체계는 금융서비스의 질 저하, 불완전판매 등 금융소비자의 피해만 가중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또 정부가 민간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을 강요할 근거가 없으며 초법적인 개입을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권에 맞는 성과중심 임금체계 구축도 문제다. 프런트 오피스와 백 오피스의 협업에 의해 이뤄지는 은행 업무 특성 상 해당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과 성과를 평가할 명확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국 은행은 처음부터 프런트 오피스 직원과 백 오피스 직원을 다른 직군으로 채용해 별도의 평가를 하고 있지만 국내 은행들은 그렇지 않다.
이와 함께 연봉제를 도입하려면 상사가 입맛대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을 막을 안전장치 마련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작은 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노조와 합의해야 할 부분도 있고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단기간에 추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단계적 확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는 금융사들의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을 유도할 가이드라인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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