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아토피로 몸을 긁으면서도 크레파스를 몸에 잔뜩 묻히면서까지 그림에 열중하는 자녀들을 보던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다. 크레파스가 몸에 얼마나 나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무독성 크레파스도 양이 적을 뿐, 여전히 중금속과 유해성분이 함유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고은빛의 주윤우 대표는 성현-성민, 두 아들의 아빠다. 여느 부모들처럼 아토피 때문에 밤새 울기만 하다가 새벽에야 지쳐 쓰러져 잠이 드는 자녀들을 보며 가슴을 앓아왔다. 그리고 여느 부모들처럼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찾고 싶었다.
그렇게 주 대표는 '초콜릿 크레파스'를 발명했다. 2014년 '비지니스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을 받아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최하는 '비지니스 어워드'에서 대상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대한민국 우수특허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발명가, 아빠로 인정받았다.
▲ 고은빛 주윤우 대표. 고은빛 제공
■ 위험한 그림 도구, 크레파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손을 움직이고 형태를 상상하며 색을 칠해가는 다양한 행동을 통해 뇌를 자극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 싶으면 으레 아이들에게 그림책과 필기 도구, 종이를 선물해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크레파스는 가장 인기가 많은 그림 도구 중 하나다. 소재가 부드럽고 말랑해 아이가 다칠 위험이 적은 덕분이다. 또 어디에 칠해도 색이 또렷하고 다채로워 아이들도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크레파스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피부병을 유발하는 유독성 물질이기도 하다. 크레파스의 원료는 석유추출물과 파라핀, 공업용 왁스 등이다. 여기에 색소까지 사용하면서 각종 유해성분 뿐 아니라 중금속까지도 검출된다.
그러다보니 크레파스를 가지고 놀다가 몸의 곳곳에 두드러기가 나는 아이들이 많다. 아토피가 유행하는 요즘에는 더 심하다. 심지어는 크레파스를 입에 넣다가 먹어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 경우는 아이가 중금속 중독에 걸릴 우려도 있다.
무독성 크레파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사들은 무독성 크레파스가 독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독성 크레파스는 일반 크레파스와 원료의 차이가 많지 않다. 단지 독성물질을 최소화했을 뿐이다. 따라서 일반 크레파스보다 조금 덜 할 뿐 아이의 몸에 나쁜 것은 같다.
▲ 고은빛의 12색 초콜릿 크레파스. 고은빛 제공
■ 먹을 수 있게 만들다
주 대표가 만들고 싶었던 크레파스는 저독성이 아닌 무독성 크레파스다. 하지만 시중의 제품들처럼 만들면서도 독성이 없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주 대표가 떠올린 것은 식품이다.
주 대표는 기왕 안전한 크레파스를 만들거라면 먹어도 되는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주 대표는 먼저 식품공전에 등재돼 있는 원료들을 샅샅이 뒤지며 연구에 돌입했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원료인 초콜릿을 찾았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색깔을 넣는데도 쉬워 크레파스의 원료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초콜릿만으로는 크레파스를 만들기 어려웠다. 초콜릿은 쉽게 녹고 채색성도 일반 크레파스에 뒤쳐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 대표는 안전한 크레파스를 위해 연구에 더 몰입했다. 그 결과 식품첨가물에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색소도 중금속이 함유될 가능성이 없는 무독성 색소를 사용했다.
결국 주 대표는 2014년 3월 28일, 초콜릿 크레파스의 특허를 출원했다. 세계 최초의 식품-문구 산업의 융복합 상품이다. 수입품 일색이었던 천연 크레파스 시장에서 국산 경쟁력도 확보했다.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도 있게 됐다.
초콜릿 크레파스의 장점이 안전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크레파스는 쉽게 가루가 생기거나 부스러졌다. 하지만 이 제품은 가루가 적을 뿐만 아니라 단단해서 불필요한 소모가 적고 호흡기 건강에도 좋다. 손에도 잘 묻지 않으며 천연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냄새도 좋다.
초콜릿 크레파스는 일반 소비자용인 12색이 기본이다. 기업이나 주문으로 생산되는 10색과 판촉물, 기념품용인 4색 제품도 있다. 제품을 확인해보고 싶은 소매상, 소비자를 위해 무작위 1색을 배송하는 샘플도 제공한다.
■ "그래도 교육을 위해 먹지는 마세요"
하지만 주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절대로 자녀들이 이 제품을 먹지 못하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제품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주 대표는 "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먹고 싶지 않도록 제품에서 단 맛과 향은 최대한 억제해서 만들었다"며 "학부모들께서 아이들이 크레파스가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 대표가 초콜릿 크레파스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제품의 가격이다. 처음에는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안전에만 몰두해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높아졌다. 다만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을 토대로 고은빛은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크레파스 전용 지우개는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물감, 페이스페인트, 점토, 립밤 등의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 건강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다.
이러한 주 대표, 고은빛의 행보는 어른들에게도 아주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은빛은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초콜릿 완제품을 국산화한다는 계획에 있다. 엄청난 고용창출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크레파스 시장에서 식품을 원료로 한 제품을 만들어내 신 시장을 창출하는 효과도 거뒀다. 수출 등 기타 경제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 대표는 "고은빛의 슬로건은 '소재부터 안전한 제조환경과 유통'이다"며 "아이들이 밤새 울던 기억을 가슴에 품고 가장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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