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난민 포용 정책을 펼치자, 일각에서 제기했던 ‘난민 위장 테러범 잠입’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유럽 각국이 일제히 난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파리 테러범 가운데 난민으로 신분을 속이고 입국한 인물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향후 목숨을 걸고 유럽행을 결정한 난민들의 처지는 더욱 암울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현지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여권과 지문을 분석한 결과, 테러범 가운데 2명이 그리스 레로스섬을 거쳐 프랑스로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이탈리아에서도 한차례 추방됐었던 튀니지 출신의 알카에다 테러범이 난민으로 위장해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테러 이전부터 이미 난민 대책을 강화하던 유럽 국가들은 이번 파리 테러를 계기로 더욱 단단히 자국의 빗장을 닫아 걸고 있다.
‘다음 테러 타깃은 로마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인터넷 등에서 확산되자 이탈리아는 14일 마테오 렌치 총리 주재로 긴급 안보위원회를 열고 국경 봉쇄를 검토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밀라노, 베네치아 등 주요 도시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는 파리행 승객에 대해 일부 통제 조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벨기에도 국경 지역 검문 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국경 봉쇄 여부를 검토 중이며,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었던 폴란드 정부도 파리 테러 직후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 조치에 나섰다.
비교적 관대한 난민 정책을 폈던 스웨덴도 지난 12일부터 국경에서 검문 검색과 여권 검사를 하고 있고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국경 통제와 이민자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과 함께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오스트리아도 난민 유입 통제를 위해 슬로베니아 국경에 철조망 설치를 검토하고 있고, 슬로베니아 정부는 최근 크로아티아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리스, 헝가리 등은 국경에 장벽을 세운 상태다.
난민들을 겨냥한 공격 행위도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테러 직후 트위터에서는 ‘프랑스 칼레시 난민촌에 큰 불이 났다’는 소문이 급격히 퍼졌고 무슬림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쏟아졌다. 최근 난민 캠프에 불을 지르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한편, 이번 파리 테러로 인해 유럽의 정치 지형도 상당 부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유럽 난민 포용 정책을 사실상 주도해 왔던 메르켈 독일 총리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내달 16일부터 진행될 프랑스 지방선거에서는 테러 영향으로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NF)이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르펜은 그간 ‘국경 폐쇄와 국가 강보 강화’를 줄곧 강조해 왔다.
지난달 폴란드 총선에선 보수정당 법과정의당(PiS)이, 스위스 총선에선 민족주의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이 승리했다. 포르투갈 총선에서도 집권 사회민주당 우파 연정이 재집권에 성공했고 오스트리아 빈 시장 선거에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가 역대 최고 득표를 기록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