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스타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 CF 등 TV를 켜면 새 하얀 복장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셰프의 시대'다. 그 중심에는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목소리의 이연복 셰프가 있다. 그의 일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 못지 않다. 평일에는 매장에서, 쉬는 날에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SBS플러스 '중화대반점'을 번갈아가며 요리 강호들과 대결을 펼치고 있다. 중식만 40년 외길 인생, 열 세살부터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으로 살아온 이연복 셰프를 만났다.
-방송 출연이 많아지면서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사람들이 알아보면서 매장 예약이 밀려 들어와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초반에는 예약 손님을 다 받다 보니 6~7개월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나중에 예약일을 잊는 손님도 많더라. 이제는 1개월 단위로만 예약을 받는데 원성이 많아서 대책을 고민 중이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나.
"사실 몰랐다. 1988년 일본에 갔을 때 '쿡방'을 처음 봤는데 정말 부러웠다. 한국에선 요리하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 아니었나.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지금이 가장 즐거운 시기다. 아쉽다면 나이가 곧 환갑이다(웃음). 그저 지금은 될 수 있으면 중식을 알리자는 생각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다."
-얼굴이 알려지면 장단이 있을텐데….
"좋은 게 더 많다. 길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사진 찍자고 하고 사인 해달라고 하고, 내게 벌어지는 일들이 꿈만 같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있을 법한 일이 요리사한테 생겼다. 생각만 해도 좋고 예전과 비교 못할 정도로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중화대반점'에서 첫 승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렇게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처음에 이기지 못하고 두번째 대결에서 드디어 1승을 올렸다. 제자가 힘겹게 연습했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눈물을 흘렸는데, 나도 뭉클해서 그 모습에 눈물났다."
-'냉장고를 부탁해' 역시 대결 구도인데 현장 분위기는 '중화대반점'에서 긴장감이 더 맴돈다.
"그렇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다. 식자재가 냉장고 안에 있는 것으로 한정 돼있다. 하지만 '중화대반점'은 주재료만 정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머리를 써야 한다. 긴장감 높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분야의 대가들이 만나서 더 불꽃 튀는 부분도 있겠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분야가 다른 셰프들이 모이니 이길 수도 있고 지는 날도 있다고 넘긴다. 최근 내가 김풍한테도 지지 않았나. 그래도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중화대반점'은 같은 분야에 40년 간 있던 사람들이다. 요리 레벨을 등급으로 나눈다면 비슷해서 은연 중에 경쟁 구도가 심하다."
-중식에만 외길 40년이다. 셰프만의 철학이 있다면.
"일부러, 억지로 연구하거나 맛을 내려고 안 한다. 억지로 하다 보면 한계를 넘지 못한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일상 생활이 식자재고 요리 대상이다. 지나가다 먹은 음식이 맛있다면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그 때부터 탐구하고 요리 대상이 된다. 모든 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데 어떻게 요리의 대가가 되었나.
"미각을 살리기 위한 나만의 일상 철칙이 있다. 후각을 잃은 뒤로 술, 담배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 또 한가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간을 정확히 못 본다."
-이른바 '철가방'으로 시작해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인생의 반전, 전환점은 언제였나.
"예전에 생활이 엉망이었다. 낭비도 심했다. 벌어도 끝이 없는, 헤어나오지 못하는 진흙탕에 빠진 삶이었다. 일본에서 겸손과 배짱을 많이 배웠다. 친절한 웃음을 잃지 않는 습관이 몸에 베었다. 그러다 보니 1998년 한국에 돌아와서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상식, 지식도 생기고 많은 공부가 됐다."
-바닥부터 최고 자리에 오른 주인공으로서 '미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디를 가든 주변으로부터 신임을 얻어라. 누군가 자신을 남에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라. 일 배울 때 나는 아픈 척을 안 해봤다. 될 수 있으면 참았다. 허구한 날 아프다고 빠지면 우습게 보이기 마련이다. 강한 마음으로 한 곳에 집중하고 경력을 단단히 쌓으면 나중에 분명 이름을 내세울 수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 않나."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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