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가에 유행병처럼 번지던 시절, 정점을 찍었던 존재는 '나는 가수다'였다. 당대 최고 가수들을 불러놓고 서바이벌 대결을 붙여버리니 웬만한 '노래 경쟁' 프로그램은 조용히 정리됐다.
요리가 방송의 대세로 떠오른 요즘, '나가수'급 존재감의 요리 프로그램이 하나 탄생했다. 중화요리의 살아있는 전설들을 한 데 모아 자웅을 겨루는 SBS 플러스'중화대반점'이다. 중식만 외길 40년을 걸어온 4대 문파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 진생용 셰프들이 10주간 최고의 요리를 놓고 펼치는 무대다.
지금까지 세 번의 대결을 마친 '중화대반점'은 갈수록 긴장감과 경쟁 구도가 달아오르고 있다. 중식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이연복 셰프도 첫 승을 올리고 눈물까지 보였다.
이연복 셰프는 "그냥 엄살이 아니라 서로 경쟁이 엄청 심하다. 이기면 미안하고 지면 또 아쉽다. 그래도 1승을 쌓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 했다. 시합 전에는 서로 어떤 메뉴를 할 지 아무도 모른다. 전화로 뭐할 거냐고 물어봤자 아무 소용 없다. 일급 비밀이다"라며 웃었다.
진생용 셰프는 "30~40년 걸어온 길이 비슷한 네 사람이다. 각자의 자존심이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엄청 긴장된다"며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는 말에 경연에 임하는 자세를 비유했다.
유방녕 셰프는 "오랜 친구들이기 때문에 1등은 누가 해도 좋다. 그 '누가'가 나였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웃음). 방송이 끝나도 1등 요리를 반드시 분석한다. 다음을 위해서 왜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잘 통했는지 장단점을 파악한다"고 비장한 태도를 보였다.
여경래 셰프는 "심리 싸움이다. 속된 말로 떨면 안 된다. 나름 몇십 년 일한 사람이니 안 들키려고 여유로운 표정을 보여주는데 쉽지 않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게 처음 생각이었는데 자꾸 승리를 놓치면서 나와의 싸움이 되고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연복 셰프는 알려진대로 43년 경력, 후각을 잃었지만 미각과 손끝 감각만으로 미식가들을 사로 잡는 인물이다. 여경래 셰프는 사천요리의 대가로 중국에서도 인정한 100대 명인이다. 유방녕 셰프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백년 넘게 중식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진생용 셰프는 35년간 호텔 중식당을 거치며 요리의 품격을 지켜왔다.
경력만 따져봐도 특별한 수식어가 따로 필요 없는 중식의 절대 고수들이다. 자기 분야에서 이미 최고가 된 50대 중년들이다. 네 명의 셰프들이 대결에 응한 배경은 하나였다. 인생을 바친 중화요리의 새로운 부흥이다.
이연복 셰프는 "양식, 한식에 비해 중식은 뒷전이 됐다. 안타까웠고 기회가 있으면 살리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이미 지나가지만 후배들에게 자그마한 빛이라도 전해주려는 마음"이라고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이같은 취지를 살려 네 사람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사부전'에 '수제자전'을 더했다, 각자 두 제자들을 동반해 그들끼리 문파의 이름을 걸고 또 다른 대결을 펼친다. 스튜디오 현장은 그래서 거대한 중화 레인지 8개가 늘 구비돼 있다.

유방녕 셰프는 "잊혀진 요리를 다시 꺼내주는 것도 시청들에게 재밌겠다 싶었다. '저런 것도 있었나' '새로운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생기면 우리 중화 요리도 발전하지 않겠나"고 했다.
진생용 셰프는 "중식에는 자장·짬뽕만 있지 않다. 중식은 기름 많고 화학 조미료가 많이 쓰인다는 편견이 있다. 인식의 변화, 개혁까진 아니더라도 왜곡을 바로 잡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경래 셰프는 "사실 수제자로 나오는 후배들도 모두 주방장 급이다. 중국요리는 정직하다. 원재료 최대한 살리는 게 본질의 맛"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촬영하는 동안엔 대결 구도에 지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약으로 돌아올 것 같다. 나의 요리인생을 정리하고 다른 거장의 요리를 보고 배울 수 있지 않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보약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중화대반점'에서는 현재까지 유방녕, 이연복, 진생용 셰프가 순서대로 1승씩 챙겼다. 무관인 여경래 셰프의 반격이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5회 방송은 14일 밤 11시 SBS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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