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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족의 역사, 땅의 역사

입력
2015.1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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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동경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즉시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보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널리 알려진 단군신화의 앞부분이다. 환웅과 웅녀(熊女)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조선(朝鮮)을 세우고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그 뒤로 이어진다. 조선왕조 탄생 이후와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古朝鮮)이라 불린 나라다.

▦ 한국사의 첫 나라인 고조선의 건국설화로서 단군신화는 민족 정체성의 오롯한 뿌리가 된다. 그런데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역사로서 읽다 보면 오히려 그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환웅의 강림(降臨)은 천신숭배 집단의 이동이다. 이끌고 온 무리 3,000명은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의 무장세력이다. 본거지에서 뿌리내릴 수 없던 서자가 그런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나올 정도라면, 북방계 유목집단을 우선 꼽을 만하다. 그러니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는 앞서 정착한 농경집단 출신으로 봐야 한다.

▦ 이렇게 토착세력과 관계를 맺은 이주집단은 또 한 차례의 세력결합 과정을 거친다. 환웅과 웅녀와의 혼인은 천신숭배 집단과 곰토템 집단의 제휴이자, 호랑이토템 집단의 배제다. 토템에 비추어 두 집단 모두 정착 농경집단보다는 수렵ㆍ채집 경제를 기초로 한 비정착 집단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단군을 공통선조로 한 단일민족으로서의 한민족이라는 환상은 깨진다. 고조선을 그런 의식의 시원(始原)으로 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만주나 요동지역이 아니라 한반도만 해도 고조선 강역 밖의 지역이 많았고, 고른 청동기 유물 분포가 보여주듯 거기에도 정치집단이 존재했다.

▦ 결국 역사로서의 단군신화조차 특정 정치집단, 특히 그 지배층을 위한 한국사 최초의 ‘용비어천가’일지는 몰라도, 민족사의 공통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 민족사라는 개념 자체의 원초적 한계다. 수많은 집단의 교류와 연합, 지배와 복종이 거듭돼 온 역사 속에서 자신이 정확히 어느 집단 출신인지 알 수 있을까. 허구에 지나지 않은 ‘민족의 역사’에서 벗어나 이 땅에 발자취를 남긴 온갖 집단과 세력의 이야기로 엮어진 ‘땅의 역사’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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