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노동자역사 한내 엮음
한내 발행ㆍ360쪽ㆍ6만5,000원
‘알기’는 주체, 중심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 노동화보집이 ‘알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까닭은 이 역사서의 집필자들이 역사 발전의 주체로 단연코 노동자들을 옹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1894년 갑오농민항쟁에서 시작해 2011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으로 끝나는 이 책은 지배권력의 행방을 좇는 기존의 역사서술 관행에서 탈피, 역사를 노동자ㆍ민중의 움직임에 대한 지배권력의 대응으로 규정한다. 지난 120년간의 근현대사는 그러므로 노동자ㆍ민중의 선제적인 움직임이 큰 물결로 모아지는 변곡점의 시기마다 권력이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책은 노동운동 자료 수집, 백서 편찬 등을 하는 노동운동단체 ‘노동자역사 한내’가 펴냈다.
이 책이 기존의 역사기술 방식에서 또 한번 탈피한 것은 문자 텍스트가 아닌 사진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저 유명한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품에 안고 절규하는 젊디 젊은 얼굴의 이소선 여사(1970년), 똥물 세례를 받고 울먹이는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1978년), 6ㆍ29선언 이후 잇달았던 노동자대투쟁(1987년)…. 책은 백만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더욱 핍진하게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의 위력으로 묵직하다.
사진설명의 연도를 가리고 보면 오늘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이 너무 많다. 노동시간 단축을 외치는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사진은 1999년 4월에 찍은 것이고, 피눈물을 흘리는 파견법 철폐 투쟁 사진은 2000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희망은 없지 않다. 도입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자본이 선동했던 주40시간ㆍ주5일 노동 쟁취 투쟁이 2000년 5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있었다. ‘엄마 아빠는 주5일 근무, 아이들은 주5일 수업’이라고 쓰인 당시의 대형 현수막 아래 절실한 표정으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 이것마저도 거저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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