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적지 않은 열성 팬을 거느린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48)는 일본에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란 평가를 받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썸머 워즈’(2009) ‘늑대아이’(2012) 등을 통해 드러난 그의 따뜻한 인간미와 가족애가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25일 국내 개봉하는 그의 신작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도 괴물 쿠마테츠와 소년 큐타 사이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에 기대 부성애를 드러낸다. 일본에서만 4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마모루는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하야오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전작인 ‘늑대아이’는 모성을 그린 반면 ‘괴물의 아이’는 부성애가 느껴진다.
“‘늑대아이’와 ‘괴물의 아이’는 연속선상에 있다. ‘늑대아이’(늑대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혈연관계를 다룬다. ‘괴물의 아이’는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괴물인 양아버지(쿠마테츠)와 생부의 부성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가장 상업적인 것 같다.
“일본에서 내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 453만명에 흥행 수입은 지금까지 57억8,000만엔(한화 540억원)이다. 아직도 일본에서 상영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다. ‘괴물의 아이’는 기획 단계부터 액션영화처럼 준비했다. 쿠마테츠와 큐타의 무술 수행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리샤오룽이나 청룽 등이 나오는 무술 영화에서 따왔다. 그런 장면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넣고 싶었다. 아마도 그런 장면이 대중성을 살린 듯하다.”
-‘괴물의 아이’에서는 여성적인 캐릭터가 많이 약화돼 좀 아쉽다.
“남성 캐릭터 중심의 애니메이션 맞다. ‘늑대아이’는 주인공이 여자였다면 ‘괴물의 아이’는 남성적이다. 쿠마테츠뿐만 아니라 돼지승려 하쿠슈보, 원숭이 타타라 등 미혼 ‘남자’들이 큐타를 키워간다. 그래도 큐타 또래의 여자가 등장해 선생님 역할을 맡았다. 성별은 다르지만 인간 세상에선 아버지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관객 중에는 큐타와 카에데가 연인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남녀가 만나서 연애밖에 할 수 없다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의 관계를 우정으로 설정했다.”
-영화에서 인간세상 시부야와 짐승세계 쥬텐가이가 인상적이었다
“쥬텐가이 디자인은 상상 속의 세계이지만 또 하나의 시부야라고 생각했다. 시부야는 항상 새롭고 화려한 곳이다. 쥬텐가이는 지중해 마을을 많이 닮았다. 시부야 지역이 처음 만들어질 때 도큐라는 철도회사 등이 설계했다. 이때 지중해 마을을 본 떠 시부야가 만들어졌다. 시부야의 유래를 떠올려 지중해 마을처럼 쥬텐가이도 만들었다.”
-‘늑대아이’에 등장했던 장소도 실제로 있는 곳인가
“그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 나온 것처럼 날씨가 맑고 늘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일주일에 반은 비가 많이 내려 우울한 동네다. 그곳에서 살면 성격이 좀 내성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화창하고 밝게 그렸다. (종이에 일본 지도를 그리며)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 있는 도야마현이라는 곳이다. 비가 엄청 많이 온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인연이 깊다는데
“어릴 때부터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고 굉장히 좋아한다. 미술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하야오가 설립한)스튜디오 지브리에 입사 시험을 봤다.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이 인기 있을 때다. 그런데 낙방했다. 떨어진 이유는 ‘우리는 밑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데 당신은 주장이 세다. 당신은 다른 곳에 가서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 속상했다.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결국 다른 회사로 가서 애니메이터로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브리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준비하는 데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단편만 만들다 장편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고, 한 번 떨어진 회사가 불러줘서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하야오 감독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맡으면서 나는 떠나게 됐다. 똑같은 회사에서 두 번이나 일이 어긋나 유감스럽기도 한다. 그런데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하니 조금 웃기고 묘하다. 아이러니가 느껴진다고 할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따로 연락을 하거나 하진 않는다. 감독끼리는 친하게 교류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다. 감독들은 자신만의 성이나 가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류를 하면 서로에 대한 비판이 없어져 발전할 수 없을 것 같다. 감독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건 서로의 영역에서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다.”
-일본의 영화산업은 어떤가.
“작년 연말에 외국 애니메이션 ‘빅히어로’가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일본에서는 외화가 성적이 좋지 않고 방화(국산영화)가 인기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방고외저’라는 말도 있다. 개봉하는 일본영화의 대다수는 애니메이션이며 관객이 꽤 많다. 흥행순위도 높다. 올 여름엔 ‘쥬라기 월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할리우드 영화가 많이 나와서 일본영화가 주춤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괴물의 아이’는 57억엔이라는 흥행 성과를 올렸다. 잘 싸워냈다. 전체적으로 일본영화 산업은 호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영화계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은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명이 앞으로 5년 남았다는 엄청난 발언을 했다. 위기라기보다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말이다. 나는 1996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진 ‘토이 스토리’가 개봉했을 때 많이 걱정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2D 시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 매장량이 30년이면 바닥난다고 난리가 났던 일과 비슷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손 그림의 애니메이션이 더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많은 작품들이 CG로 나올 때 나처럼 수작업을 통한 애니메이션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을 어떻게 보는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들었는데 한국 정부가 애니메이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한다고 하더라.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새롭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들이 더 탄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영화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 영화가 그렇게 재미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이라고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 지원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 돈만 있다고 문화가 육성되는 게 아니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점을 지향하는지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한국영화는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써니’ ‘추격자’ ‘황해’ ‘마더’ 등을 재미있게 봤다. 특히 봉준호 감독을 좋아해서 그의 작품은 거의 다 봤고 좋아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김윤석 송강호 배두나 등 한국배우들도 좋아한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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