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각기 ‘경제 살리기’와 ‘민생’을 이슈로 정면 승부에 나섰다. 키워드는 비슷하지만 새누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임대주택법을 앞세우는 등 내용면에서는 간극이 상당하다. 내년 총선 전략과도 맞물려 논의 과정에서 대충돌도 예상된다.
새누리는 “95만개 일자리” 경제활성화 올인
새누리당은 ‘일자리 창출’을 앞세워 야당의 반대를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경제활성화 4법 통과로 모두 95만1,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연내 비준이 안 되면 연간 1조원 이상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적극 펴고 있다.
정부ㆍ여당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야당의 합의를 기다려온 만큼, 야당의 반대를 ‘발목 잡기’로 규정하고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뜻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에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권한을 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경우 18대 국회 임기종료로 폐기됐다 정부가 지난 2012년 7월 다시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야당이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반대하는 데 대해서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관광숙박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도 2012년 9월 제출됐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논란이 됐던 경복궁 옆 호텔 건립은 대한항공이 해당 부지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개발하겠다고 확정하면서 백지화됐음에도 야당이 교육환경이 나빠질 우려가 있다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사ㆍ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 발의됐지만 상임위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해외환자 유치 및 국내 의료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여야 논의과정에서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하는 내용을 삭제키로 사실상 합의하면서 그나마 통과 가능성을 높여놓은 상태다.
새누리당은 현재 노사정위원회의 후속 논의가 진행 중인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 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 ‘노동개혁 5대 법안’도 연내 처리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오는 16일 노동개혁 관련법의 국회 상정으로 앞두고 지난 10일 소집된 긴급 당ㆍ정ㆍ청 만찬 회동에서 이인제 당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의회주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며 강행처리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새정치는 ‘대안정당’ 메시지 전달에 치중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생 최우선주의 10대 법안’은 여당의 ‘경제활성화ㆍ노동개혁 9법’처럼 일점돌파(一点突破) 전략이 아닌, 야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법안들을 묶어 놓은 메시지의 성격이 강하다. 각종 경제 살리기 법안을 통해 여당의 정책에 맞불을 놓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대표되는 야당 우위의 이슈에 대해서도 여론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민생 살리기 관련 법안은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통신비를 경감하는 등 서민의 고민을 풀어주는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임대주택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전ㆍ월세 상한제 등을 도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수도권과 젊은 층에 파급력이 큰 주거 문제를 야당이 선점해 표심을 확보하려는 취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여당에 주거권의 안정적 보장, 그거 하나 만이라도 우선 처리하자는 의지를 보여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이마저도 미루고 있다”며 “향후 국회 일정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전월세 카드는 여당의 회피 전략 등으로 금명간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 상황에서 당내에선 전월세 법안 처리 방향을 두고 불협화음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 서민주거특별위원장인 이미경 의원은 12일 열린 당 정책의원총회에서 “국회 차원 특위가 (연구)용역까지 주며 여야 의견을 잘 좁히고 있는데 전월세 문제를 야당 중점 법안으로 연계시키면 안 된다”고 원내지도부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살리기 법안도 험로가 예상된다. 대기업에 청년 고용 의무를 할당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과 재벌에 대한 특혜성 비과세 감면 혜택 폐기가 골자인 법인세법 개정안 모두, 현재 정부ㆍ여당이 친 재벌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점을 고려할 때 협상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국회 심판론과 야당의 이념 지향이 걸림돌
여야가 ‘민생’을 두고 경쟁에 나섰지만, 국회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심판론까지 제기하며 법안 통과를 압박한 것이 야당의 입지를 좁혔다는 분석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회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 전환에서는 성공했다”면서도 “여당으로서는 야당을 설득해 협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기회마저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10대 법안에 국정교과서 반대 관련 내용 등 정치적 이슈를 포함시킨 것 역시 전체적인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교과서 문제까지 민생 범주에 넣은 것은 선거를 앞둔 정당 특유의 정치 만능주의 셈법 때문”이라며 “민생과 이념 문제를 분리해 대응해야 그나마 실익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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