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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품삯 기준, LH공사장서도 '휴지조각'

입력
2015.1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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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선 두 배 넘게 일해도 적용 안돼

공기 맞추기 급급 초과노동 일상적

국토부 ‘규제용 제도는 아냐’ 방관

1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위례신도시에 위치한 LH공사의 행복주택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달부터 이곳에서 일하는 11년 경력의 형틀목수 김근수(가명)씨는 오전7시부터 오후5시까지 10시간 동안 유로폼 30장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벽을 만들 때 사용하는 거푸집인 유로폼을 20분에 1개씩 만든 셈이다. 이마에 땀을 훔치던 김씨는“하루에 50개 넘게 만들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화장실 한번 갈 틈이 없다”고 말했다.

숙련공인 김씨는 이렇게 일하고 하루 일당으로 15만원을 받는다. 하루 15~20장을 만드는 초보자들에 비해 3만원 정도 높은 금액이다. 그런데 김씨의 작업량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인‘표준품셈’을 거의 2배 초과한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건설공사 표준품셈’은 정부ㆍ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공사를 발주할 때 공사비에 들어가는 노임 산정 기준이다. 여기에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건설노동자ㆍ건설기계의 작업량에 대한건설협회의 시중노임단가를 곱한 것이 관급공사 인건비다.

김씨와 같은 형틀목수의 경우 표준품셈은 하루에 유로폼 15개를 제작하는 것으로 돼 있다. 김씨로선 표준품셈보다 2배의 일을 하고 추가노임을 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당 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안고 있는 김씨는 “표준품셈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다”며 “현장에서는 작업팀장 지시에 따를 뿐 노동강도를 따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 성남시 복정동 위례신도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거푸집(검은색 판자)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복정동 위례신도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거푸집(검은색 판자)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건설공사비 책정을 위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량을 규정하는 표준품셈을 1976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은 건설현장에서는 39년째 무시되고 있는게 건설현장의 일상 모습이다. 현장 관리자들은 건설노동자들에게 상시적으로 표준품셈을 초과하는 일을 시키고, 건설노동자들은 기준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면서 일당은 정해진 단가로만 받고 있는 것이다.

건설장비노동자들도 초과노동을 하는 현실은 다르지 않다. 표준품셈에 따르면 건설기계 임대료는 기계 경비(재료비ㆍ기름값ㆍ기사 인건비)에 작업량을 곱해서 산정된다. 덤프트럭의 경우 건설현장과 흙을 퍼오는 장소 사이의 거리를 달리는 트럭의 주행 속도가 표준품셈인데 일반포장도로에서는 40㎞, 고속도로에서는 50~60㎞가 기준이다. 20년 넘게 덤프트럭을 몰고 있는 박영주(49ㆍ가명)씨는“시내에서도 60㎞, 고속도로에서는 80㎞로 달려야 하루 할당량을 겨우 채울 수 있다“며 “차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건설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행복주택 시공사인 D사 관계자는 “정해진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현실론을 거론했다. LH공사 관계자도 “건설현장이 이런저런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표준품셈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공기(工期)가 우선이고 초과노동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어려움마저 뒷전이다. 30년 경력의 한 형틀목수는 “이런 막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허리통증을 달고 산다”고 토로했다.

당국도 이런 현실에는 관용적이어서, 표준품셈을 초과하는 일을 시켜도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표준품셈을 공사비 산정을 위한 권고기준으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기술기준과 관계자는 “표준품셈이 노동강도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표준품셈이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지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초과노동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현장 별로 상이한 노동강도를 표준품셈에 맞추고 표준 임금도 국가가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설공사의 직종별 적정임금과 건설 장비 임대료의 정부고시를 골자로 한 ‘건설기능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토부와 고용노동부의 영역다툼으로 3년째 계류 중이다. 장형창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직실장은 “최저가 낙찰로 일단 공사만 따내고 보자는 건설업계 문화 탓에 초과노동이 방치되고 있다”며 “건설현장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임금체불의 문제는 법제화로만 풀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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