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6.5] 다시 찾아 온 생색의 계절

입력
2015.11.12 20:00
0 0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당정협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당정협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신용카드 수수료 최대 50% 인하. 새누리당이 해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해냈습니다. 동네가게 카드수수료 반값 인하! 해당 가맹점을 더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 집 근처를 지나다 여야가 내건 현수막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빨간색, 파란색, 색깔만 다를 뿐 ‘내가 큰 일을 해냈소’라는 내용은 똑같았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신용카드 체크카드 수수료율을 내린다고 발표하자마자 여야는 자신들의 역할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새누리당은 “우리당은 정부에 영세상인과 소상공인을 위해 카드수수료 인하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했고, 새정치연합은 “정부의 이번 결정은 우리당 의원들이 절치부심한 노력 끝에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만에 서민친화형 정책이 하나 나오자 정치권이 공치사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것은 무엇보다 내년 4월13일 치러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문이다.

바야흐로 여의도에 생색내기 시즌이 돌아왔다. 꼬박 5개월 남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시선 끌기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안간힘 쓰기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나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요즘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

대표적인 것이 특별교부금. 국회 출입 기자들은 국회의원들이 보내는 ‘특별교부금을 얼마 확보했다’는 ‘자축’ 내용의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하루에도 몇 개씩 받는다.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어느 초등학교의 체육관 건설을 위해 교육부로부터 몇 억 원을 확보했다’ ‘지방도로 개설공사 비용으로 행정자치부로부터 몇 억 원을 따냈다’는 식이다. 뿐만 아니다. 지역의 천변 산책로 조성, 노인복지관 증축, 주민센터 엘리베이터 설치 등에 필요한 돈을 어렵게 마련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나 출마를 준비 중인 지역을 위해 예산을 따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혹시나 기자들이 잊을까 봐 메일을 보낼 때마다 누적 확보 금액을 요약 정리 해주는 ‘친절함’까지 서비스한다. 특히 평소 자기자랑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성품 좋은 의원들까지 생색내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쓴웃음이 나온다.

특별교부금은 중앙정부가 열악한 지방재정을 보완해 재정 균형을 맞춘다는 뜻에서 각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재원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 본 예산과 달리 행정자치부, 국민안전처, 교육부가 지자체의 신청을 받은 다음 비공개 심사를 거쳐 곧바로 지자체에 주기 때문에 지자체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소 중앙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는 노릇. 그런 지자체를 대신해 국회의원들이 나서 지자체에 특별교부금을 ‘배달’해 주면서 생색을 내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가 전해 준 특별교부금 쟁탈전의 현주소를 들으니 왜 의원들이 그토록 자랑을 하게 되는지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특별교부금은 신청부터 교부까지 과정이 사실상 비공개라 결정권자인 장관만 잘 설득하면 확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구애와 협박이 치열하다. 자칫 옆 동네 의원보다 못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지역에서는 찍히기 때문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고 전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현재도 수 조원 규모인 특별교부금을 좀 더 올려주자는 ‘암묵적 동의’까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돈은 국민의 낸 세금인데도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시민사회단체들을 비롯해 일부에서는 ‘특별한 목적’이라는 애초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 건물 짓고 도로 깔고 하천 정비하는 데 쓰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다를 바 없는데다 심사 과정도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특별교부금 무용론까지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향한 의원들의 뒤틀린 애정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생색내기를 내년 총선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막힌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