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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복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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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복 권하는 사회

입력
2015.1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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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복을 뜻하는 카무플라주는 단일 시점을 교란하고 시각에 다양한 관점을 도입한 입체파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위장복을 뜻하는 카무플라주는 단일 시점을 교란하고 시각에 다양한 관점을 도입한 입체파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위장복은 20세기의 발명품이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띄지 않기 위해 만든 옷이다. 위장을 뜻하는 불어 카무플라즈(Camouflage)는 연기를 품어낸다는 뜻이다. 착색과 동물의 보호색을 대용할 수 있는 패턴, 사물의 실루엣을 흐리게 표현해서 '적의 시각적 탐색'을 회피하는 과정이란 의미로 발전했다. 위장이란 자연계에선 일반적이다. 메뚜기와 방아깨비의 몸 색깔은 풀 빛깔과 닮았다. 주변 환경과 비슷한 보호색 덕분에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방아깨비 같은 풀벌레는 초록색뿐만 아니라 갈색으로도 몸 색깔을 변화시킨다. 주변 환경이 어둡고 누렇게 변한 곳에선 어김없이 갈색으로 위장한다. 나무에 사는 하늘소나 매미는 나무껍질과 비슷한 보호색으로 위장한다.

곤충은 보호색보다 발전된 의태(mimicry)를 하기도 한다. 의태(擬態)는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주위 환경을 흉내 내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빛깔뿐만 아니라 형태까지도 유사하게 위장한다. 대벌레는 나뭇가지와 빛깔뿐만 아니라 모양도 매우 흡사하다. 벌은 아니지만 벌처럼 힘센 곤충으로 의태할 때도 있다. 말벌을 닮은 호랑하늘소는 자신보다 힘센 곤충으로 위장, 자신을 보호한다. 곤충들은 생존을 위해서 주변의 환경과 비슷하게 위장하고 숨기 바쁘다. 천적의 눈에 띄면 목숨을 잃기에 위장하고 숨는 건 곤충의 본능이다. 마치 전장의 군인들이 숯으로 얼굴에 줄을 긋고 머리에 나뭇잎을 꽂고 위장하는 것처럼.

인간은 타고난 위장기능을 갖고 있진 않지만 위장 형태는 오래 전부터 사용했다. 미국평원을 무대로 생활하던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사냥하는 물소가죽을 뒤집어쓰고 의태를 했다. 동물의 의태기술은 소규모 부족전투에는 적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규모의 군사력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점차 중요성을 잃었다. 전쟁이란 양쪽이 서로를 확연히 볼 수 있는 평지에서의 전투가 주를 이뤘고, 창과 칼로 싸우는 전쟁에서 위장은 별 의미가 없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양 군대는 화려한 군복을 입었다. 대오를 유지하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전쟁이나 국경에서 전쟁을 벌이는 군대에게 화려한 유니폼은 매우 불리한 효과만을 야기했다. 특히 은밀한 장소에서 상대를 급습하거나 위장을 통해 사냥을 해온 비정규군과의 싸움에서 불리했다. 특히 정교한 장거리포와 총의 발전으로 표적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게 되면서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루드어로 카키란 먼지의 색이란 뜻이다. 카키색 유니폼은 1890년대 남아프리카의 보어 전쟁에서 게릴라전에 대비하여 영국이 표준 군복으로 채택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공중전과 참호전의 등장으로 위장 전투복의 요구가 커졌다. 공중투하된 폭탄을 피하기엔 기존 왕립군대의 화려한 의상은 구식에다 위험했다.

위장복의 어원이 불어가 된 건,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호되게 당하면서 백색 장갑과 빨강색 바지를 입었던 이전 군복을 잊고 절제된 군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입체파 회화에서 생각을 빌려왔다. 입체파 화가들에게 대포에 위장회화를 그리게 했다. 이후 행동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시각이 사물의 위치를 찾고 감지하는 과정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국방색 무늬라 부르는 US 우드랜드 패턴을 만들어낸다. 1980년대 중반 위장복에는 형질변화가 일어난다. 힙합 밴드들이 위장복을 비롯한 군복을 입었다. 그들에겐 도시가 '전쟁터'였다. 인종 간 갈등과 보수우익의 정치적 수사가 거세진 시대. 당시 랩 가수 퍼블릭 에너미는 흑백으로 된 우드랜드 패턴을 입고 ‘It take a nation of million to hold us back’(우리를 막으려면 100만의 국가가 필요하다)이란 노래를 불렀다. 당대의 흑인 현실을 자각하고, 백인 파워 엘리트 사회에 저항하라는 메시지였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위장복이 필요할 지경이다. 정부의 국정 교과서 요구를 비판하는 순간, 좌파란 이름으로 포화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위장복을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준 입체파가 지금껏 미술사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자기만이 중심'이라고 믿는 이들의 단일 시점이 아닌 '기존의 틀을 깨고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걸 알린 데 있다.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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