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인구는 서독의 26%에 불과했지만, 북한 인구는 남한의 50%나 됩니다. 남한이 통일 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과 비용이 서독 수준을 크게 능가할 것입니다.” (한스 마이어 전 독일 훔볼트대 총장)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 등 국책 역사연구기관 3곳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광복 70년의 회고, 광복 100년의 비전’을 주제로 열린 대회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스 마이어 전 독일 훔볼트대 총장은 남북한의 통일 과정이 동서독의 통일보다 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통일과 한국을 위한 교훈’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그는 “북한은 공산주의 일당 독재를 구축한 나라 중에도 사이비 공산주의 세습왕조를 세웠다”며 “북한인구의 높은 점유율, 중국과 미국의 관심사 등도 한국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대와 훔볼트대에서 국가법, 행정법, 재정법 등을 연구해온 학자로 독일연방의회 및 상임의원 재정관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독일 통일 과정에서 주요 정책 자문역을 맡았다. 이 공로로 독일 정부로부터 제1급 십자가 훈장을 받기도 했다.
마이어 교수는 “통일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전 동독 지역 생산성은 여전히 서독의 80% 이하이고, 수십억 유로의 보조금에 의해 삶의 질이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일 이후 혼란을 줄이려면 “남북한 사이의 충분한 인력 교류를 계획해, 남한의 전문가들이 통일 이후 북한의 시장경제체제와 행정, 정치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 이후 북한 지역 재건에 힘쓸 남한 기업인과 전문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사전에 고민돼야 한다는 취지다.
또 “통일 헌법 제정 과정에서 서독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돼 동독 지역에서 보수 우익과 우익 극단주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한국의 경우 임시 헌법에 상호 동의하고 궁극적인 헌법 초안 작성은 남북의 인구 비율에 따라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 등에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이 여타 주변국과의 외교적 관계 회복에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브래드 글로서만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재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라면서도 “다만 사상, 출신지역, 계층 등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돼 있어 오로지 일본과 같은 강력한 타자를 적대할 때에만 통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궁극적인 성공은 변덕스러운 북한을 상대로 힘겨운 협상을 이끌어 내는 데 달려있고, 이는 국제적인 지지를 확보할 때만 가능한 일”이라며 “한국이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적대적 정체성을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